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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컨텐츠 연구

커피 세 봉지

무량수won 2014. 4. 10. 12:59

팀블로그에 먼저 쓴 글입니다. 한동안 일상적인 이야기를 개인 블로그에 그동안 많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서... 옮겨와봤습니다. ^^;;






커다란 머그잔에 믹스 커피 봉지 세개를 뜯어 부었다. 촤악 촤악 촤악. 거무스름한 갈색의 가루와 하얀 가루들이 떨어진다.


원래 커피를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식후 한 잔 하루에 최소 한잔 같은 일상커피 중독도 아니다. 20살 적엔 일년에 한번 가야 캔커피 하나 마실까 말까 할 정도로 커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커피전문점이 한국에서 유행을 타고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며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때, 사실 나도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러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처럼 커피전문점 문화 속에 나도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내가 손가락질 하던 된장녀의 된장남 버전으로 커피전문점에 앉아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된장녀라 불리던 무리의 심정과 왜 그녀들이 커피전문점에서 그 비싼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들이 즐기는 문화에 동화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커피전문점에 가면, 나도 커피를 마신다. 비싼 커피로만 알고 있었던 커피 가격을 일종의 자릿세로 인식하면서부터 썩 내키지 않아도 한 두잔은 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커피전문점의 커피만 마시는 여자들을 구분지어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다. 뭐랄까... 이제는 타인의 소비에 대해 궁시렁거림을 할 나이가 아닌 것이랄까? 어쩌면 타인의 삶에 무감각해진 탓도 있겠지만, 나름의 고생으로 벌은 돈을 가지고 하는 소비를 내가 탓할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남 자들도 그런 사치 같은 소비를 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음... 장난감 수집이라던지 혹은 영화 평론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주 한편씩 영화를 본다던지, 또는 필요도 없는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꼭 필요하지도 않은 튜닝을 한다던지 말이다.


남자들에게 쓸데없어 보이는 비싼 커피는 여자들에게 쓸데없어 보이는 남자들의 장난감이나 자동차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10년 전에 했다면, 곳곳에 숨어있는 인터넷 마초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욕을 한가득 썼을 테지만 이제는 시대도 바뀌었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어서 이런 것으로 욕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오히려 이런 것을 욕하는 것에 반박 댓글 혹은 반박 욕(?)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쩌다 커피를 즐겨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에서 된장녀와 취미 이야기 쪽으로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생각이 변했어도 커피는 상대적(?)으로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써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거부하는 것도 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머그잔에 믹스 커피 봉지를 세개씩이나 뜯어 부어버리는 것은 그 거부하고 싶은 커피의 맛을 즐기기 위함은 아니다. 심리적으로 대중에 속하고 싶지 않은 나를 놓아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애써 거부하려고 했던 대중이란 무리 속에 한 번 쯤은 속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잘 마시지 않는 커피를 무리하게 마시게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커피는 그런 것이다. 언제나 스스로 내뱉게 되는 말이 있는데, "나는 대중을 관찰하는 관찰자일 뿐이야"라는 말이다. 커피는 그런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해주는 상징 같은 것이다. 무언가의 본질을 알고 싶어할 때, 관찰만 한다고 해서 진짜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나는 커피라는 것을 신호로 대중 속의 한 명이 되어 대중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냥 기괴한 말일 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왠지 모르게 커피가 끌려서 엄청나게 폭주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그 단순한 행동에 왜 이런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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