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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717] 헤어지다. 본문

상상 속 이야기

[717] 헤어지다.

무량수won 2013. 10. 3. 08:42

눈을 떴다.

 

어느새 밝은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녀가 침대 옆에 한참 동안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새하얀 등에 아침 햇살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뒷모습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매우 고요했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그녀와 만난 지 이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차가운 손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지금 깬 거야? 이제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야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야? 손이 굉장히 찬데?","그래?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대답을 하고서 그녀는 자신의 손을 비볐다. "차가워 진 건가?" 무심하게 이 한마디를 뱉고서는 주섬주섬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챙긴다. 잠시 후 샤워부스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이미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다. 무거운 눈 커플을 꿈뻑꿈뻑이며 거울에 비쳐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침대 옆 탁자가 올려진 스마트폰의 버튼을 습관처럼 눌렀다. 7 17.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찌뿌등하다. 뻐근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샤워부스로 향한다. 샤워기에 물을 틀어 샤워를 하고 몸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옷을 찾아보니 내 옷들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녀가 자신의 옷을 챙기면서 내 옷까지 정리했나 보다. 가끔 그렇게 정리를 해주던 일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광경이 낯설었다.

 

서둘러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빨리 나와. 늦겠어." 출근준비를 끝낸 그녀가 문 앞에서 채근거린다. "! 넥타이만 매면 돼, 조금만 기다려." 이렇게 말하고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평소 같으면 불퉁거리면서 샐쭉한 표정을 지었을 텐데, 오늘은 체념 한다는 듯이 묵묵히 기다렸다.

 

 

차에 올라탔다. 항상 같이 출근하는 날은 그녀가 운전을 한다. 그녀의 회사가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는 좀 더 멀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좀 돌아가더라도 데려다 주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서로 힘들고 부담이 된다며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남자가 해야 한다며 운전대를 내주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의 뜻대로 운전대를 내주고 말았다. 그렇게 같이 출근하는 날이면, 보통 퇴근도 같이 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날이다. 별 다른 것은 없는 하루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 창 밖을 바라 보았다그런데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의 느낌이 이상했다

 

기묘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표정이다. "저기..." 대화를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입을 뗀 순간 회사 앞에 이미 도착해 버렸다. "자기야. 이따 퇴근하고 봐. ! 그리고 오늘 좀 늦을지도 몰라. 상황 봐서 알려줄게.",", 운전 조심 하고." 결국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다. 그녀가 멀어져 간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손을 흔들었지만 마치 연줄 끊긴 연을 보내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책상에는 오늘 진행해야 할 업무 일정이 적힌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노트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바라보니 후배녀석이 놀래 키려고 하는 듯이 몰래 다가오고 있었다. "에이 들켰네. 선배! 뭐하고 계십니까? 출근하시고 벌써 몇 시간째 멍하니 앉아계시고. 아까 부장님이 한참 동안 노려보시다가 올라가셨어요. 평소에는 못 잡아 먹어 안달이던 사람이 오늘은 그냥 올라가시던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별일은 없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서. 어제 맡겨놓은 건 다 처리한 거야?","당연하죠! 그러니 제가 여기 와서 선배님 걱정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까톡!" 퇴근시간이 다 되서야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침에 일이 늦어져서 카톡이 왔다는 사실만 인식한 채, 컴퓨터 모니터만 주시했다. '뭐지? 하루 종일 연락도 안 하더니 이제서 하고.' 나는 그녀가 보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한 채 업무를 계속 진행한다. 마치 단단히 화라도 났다는 것을 표시라도 하는 듯이.

 

7 17. 일이 끝나서 스마트폰을 켜봤다. 참 이상한 시간이다. 스마트폰 액정엔 그녀가 카톡을 보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일이 많이 늦어졌다. 부랴부랴 퇴근 준비를 한다. 카톡 확인은 지하철에 타고 나서 보기로 했다. 아직도 나는 화가 나있다는 것을 무언의 메시지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지하철에 올라 탔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늘 그렇듯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렸다. 스마트폰으로 시간만 확인한 채, 그녀의 메시지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집안에 불이 꺼져있다. 내 차는 그녀의 집 앞에 주차되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온 흔적이 없다. 어두운 집안. 나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멍해져 있었다. 그때가 되서야 조심스레 손 안에 있던 스마트폰을 들여다 봤다. 스마트폰이 켜지도록 버튼을 누르고 잠김을 푸는 손동작을 취했다. 카톡 어플에 있는 숫자 1이 유난히도 붉다. 어플을 눌러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안해. 우선 이 말부터 꺼내야 할 것 같아. 한참을 생각했어. 그리고 오늘 말하기로 결심을 한 것 뿐이야. 우리 그만하자. 미안해. 자기 물건은 내일 갈 때 가지고가 줘. 나 오늘은 엄마 집에서 자고 갈 꺼야. 자기 얼굴은 안 봤으면 해서 어렵게 마음 먹은 거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거든. 자기가 나와 헤어지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거, 나도 알고 있었어. 나한테 정리할 시간을 준 거 고마워이렇게 헤어지는 거 안 좋은 건 아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 그리고 고마웠어."

 

 

예상은 했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안절부절 하던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니어제도 말하려고 한참을 망설였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피부결이 나에게 느껴지는 순간, 그 모든 고민을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며칠 동안 그녀의 몸 앞에서 내 의지는 무너져 내렸었다막상 이렇게 이별통보를 받고 나니 괜히 화가 났다. 내가 먼저 그렇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녀가 그것을 눈치 채고 먼저 정리한 것 뿐인데 말이다.

 

그녀의 집에서 내 물건을 챙겨서 나왔다. 내 물건들을 들고 차로 향하는 발이 무겁다. 면도기와 면도 크림, 몇 벌의 양복과 가볍게 입었던 옷들그리고 칫솔.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내 차 키. 얼마 되지도 않는 짐들인데 군대에서 행군 하던 때를 생각나게 했다

 

뒷좌석에 내 물건들을 던져 넣는다.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술이라도 마실까?' 괜한 생각이다. 이미 다들 장가간지 오래된 녀석들 뿐이다. 요즘은 다들 결혼을 늦게 한다던데, 내 친구들은 이상하게 다들 일찍 결혼을 했다. '그래도 불러내면 나와주려나?'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래도 같이 교실에서 도시락 까먹던 녀석들 밖에 없는 것 같다. 괜히 차 앞 좌석 문만 열어놓은 채로 친구들한테 전화 해본다.

 

친구들의 한결 같은 한마디. "미안 마누라가 오늘은 안 된다고. 하네. 애들도 봐야 하고. 주말에 보자. 내가 어떻게든 시간 비워 놓을게.",". 아니야. 괜찮아. 너 편할 때 한잔하자. 무리하지마.","미안하다.","그래. 쉬어라."

 

전화를 모두 끊은 뒤 그녀의 집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 동네에 오지도 못하겠구나. 조만간 이사를 가려나?' 괜히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차에 시동을 걸고 그 동네를 빠져 나왔다

 

 

정신 없이 달이 지났다. "! 임마. 이걸 이렇게 처리하면 어떻게 하냐! 어우 진짜 이걸.","헤헤, 죄송해요. 제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얌마, 이게 열심히 거냐? 아주 그냥 터진 입이라고 변명이 줄줄줄 새는 구만.","그러니까 제가 후배고 선배가 선배 아닙니까. 헤헤. 죄송해요. 제가 오늘 쏠게요. 다음부터는 이런 없을 것이라고 국기에 대해 맹세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기가 때문에 모독 당한 째인데 국기에 대한 맹세냐. 빨리 가서 다른 업무나 마무리 지어. 이건 내가 처리해 테니까."

 

"띠링~"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소리가 스마트폰에서 울렸다

 

"죄송해요, 선배. 퇴근하고 ! 오케이?","빨리 꺼져. 짜식아 이걸 처리해야 나도 퇴근을 하지바빠 죽겠는데, 신경 쓰이게 광고문자나 날라오고 어휴." 지우려고 스마트폰을 켰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 그러나 문자에는 미안하다는 단어로 시작되는 장문의 문자메시지였다. 순간 가슴이 심하게 요동이 쳤고, 숨도 가빠왔다. 짧은 시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녀와 내가 다시 만나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 내가 그녀의 문자를 계속 무시하고 지금처럼 마치 그녀의 자리가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등등. 어느 쪽도 유쾌하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힘겨웠다

 

그녀의 문자는 읽지 않고 지웠다. 지우고 상태로 한참을 정지 영상처럼 멈춰있었다. 마치 혼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지우지 말걸 그랬나?','내용이라도 읽어 것을 그랬나?','어짜피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만나라도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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