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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이야기

[717] 글쟁이 핑계

무량수won 2013. 11. 14. 09:51

정말 안 써진다. 안 써져.”

 

열심히 끄적거려 놓았는데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 순간 A4 용지로 10장 가까운 글을 없애버렸다. 종이 낭비할 일은 없다.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지운 것 뿐이니까. 컴퓨터가 묻는다. “지우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녀석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나에게 건네준다. “, 아니오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기분에 따라서, “를 눌렀다.

 

화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이 사라진다.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곧 바로 머리를 헝크러뜨리기 시작했다. “으아!!!~~~” 곧 닥쳐온 후회. 엉터리 같지만 그 양의 글을 쓰기 위해서 보낸 시간, 이렇게 저렇게 보낸 시간 등등이 떠올랐다. ‘이 놈의 성질머리’, ‘아니, 쓸데없는 완벽주의누구를 탓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스스로를 욕하게 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 이 문제의 원인의 화살표를 돌렸을 테지만 그럴 만한 사람 조차 없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책에 관련된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쓴 이런 글을 봤다.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멋모르고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뭔가 부족해 보여 기존 작가들의 글을 열심히 읽는다.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으러 다니고 이것 저것 배우고 그들의 완성품을 본다. 내 글을 다시 한번 써본다. 내 글이 안 써질수록 점점 이미 글쟁이로 나선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는다. 나는 왜 그들처럼 될 수 없는지 한탄만 남는다.”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 글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그 단계를 넘어서면 좀 더 색다른 세상이 글 쓰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였다. 왠지 모르게 이제 막 걸음을 뗀 아이의 걸음마에 대한 한숨을 듣는 느낌이랄까? 인터넷에서 본 글을 쓴 사람의 심리는 완벽해지고 싶다라는 마음과 그들을 닮아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엉켜있는 것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서 마음이 조급해지면,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에 마구잡이로 끄적이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잘 풀리면 예상치 못한 성공(?)의 맛을 보는 것이고, 실패하면 다시 인터넷의 글과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뭐랄까? 그건 끝나지 않는 고민의 굴레의 시작일뿐이다. 이걸 글쟁이들의 숙명이라고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그렇다. 그저 그 고민의 굴레에 빠지는 이유들이 다 다를 뿐이다.

 

 

나는 지금 여러 번 그 굴레를 돌고 돌아 지금은 마구잡이로 글을 쓰는 단계에 돌입했다. 이 단계에서 내가 항상 하게 되는 짓은 열심히 써 놓은 것을 기분에 따라 휙휙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금 나는 미친 듯이 써내려 간 글 하나를 지웠다. 누군가 에게는 10장의 보이지 않는 종이고, 누군가 에게는 그냥 컴퓨터로 적은 헛소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순수하게 끄적거리는 시간만 12시간의 작업 이었고, 그 글을 쓰기 위해서 하염없이 흘려 보내야 했던 48시간이 추가된 시간이다.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듯이, 그 오랜 시간의 결과물을 게임에서 새로 시작하듯이 지워버린 것이다. 그래! 지금부터 내 탓을 하지 말고 게임 탓을 해야겠다.

 

내 이런 행동은 모두 게임 탓이다. 아니. 컴퓨터의 발달 탓이다. 게임을 하면 익숙해지는 것이 실수로 인한 실패다. 그 실패에 대한 대처로 게임은 실수한 부분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정답을 대답하도록 혹은 행동하도록 이끈다. 또한 게임이 근심 걱정이 되었을 때는 그냥 컴퓨터를 꺼버리면 된다. 종종 게임에 대한 환상이 머리 속을 지배하지만, 그래도 한참을 꺼놓고 있으면 근심 걱정에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게임에 익숙해진 나는 자연스레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쉽게 글을 지운 것이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48시간이든 36시간이든 신경 쓰지 않고 지운 것이다. 마치 게임에서 다시 플레이를 하듯이. ! 또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런 완벽한 성향도 게임 탓인 것 같다. 그래 맞아. 내가 글을 쉽게 버리는 이유와 글이 잘 안 써지는 이유는 모두 게임 탓이다.

 

드디어 찾아냈다. 내 글 쓰기를 방해하는 요인 말이다. 결국 게임을 많이 한 탓이구나. 게임을 모두 지운다. 컴퓨터가 물어본다. “정말 지우시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물어보냐? 당연히 !”

 

화면에서 게임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가느다란 줄이 점점 길어진다. 컴퓨터는 종이가 사라지는 영상을 만들어서 내게 보여준다. ‘이제 글이 잘 써 질 꺼야.’ 라는 생각에 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시계를 봤다.

 

아침 717

 

결국 밤을 샜구나. 푹신 푹신한 이불과 쿠션을 끌어 안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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