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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4회를 보고... 본문

역사/역사잡담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4회를 보고...

무량수won 2012. 3. 10. 21:45
역사에 관한 잡담은 언제나 그렇지만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우선 명확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려내야 하고, 인용하는 학자의 명성도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명성이란 그 학자의 유명도에 대한 것이 아닌 얼마나 사료에 대한 검증을 거치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는가하는 점을 말한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최근 오보처럼 하지도 김정남이 꺼내지도 않은 천안함에 관한 말을 마치 김정남이 꺼냈던 것 처럼 꾸미는 짓따위를 하느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포스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한홍구는 얼마나 믿음직한 학자인지 부터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될 것이다.


내가 바라본 한홍구는 1970년대를 넘어오기 전 역사에 대해서는 꽤 괜찮게 평가하고 싶다. 비록 내가 읽은 그의 저서가 <대한민국史>뿐이긴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신뢰도와 재미는 꽤 괜찮았었다. 특히 대중적 역사서의 가치도 꽤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아직은 해당 인물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역사서라기 보다 단순히 과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저서 <대한민국史>는 2권까지는 흠을 잡을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3권으로 넘어오면서 나는 한홍구라는 학자에 대해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느낌이 너무 많이 개입이 되어버려 1권과 2권에서 보여줬던 냉철한 날카로움이 매우 무더져버린다. 3권부터는 그저 과거 회상 이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의 실망은 강연에서 보여졌던 모습에서였는데, 대한민국史 1권과 2권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칼을 지닌 장수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의 가벼움에 대한 실망이 아닌 뒷받침이 부족한 말에 대한 실망이었던 듯 싶다. 어쩌면 그의 어수룩한 말솜씨 때문에 오는 거부감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선입견(?)에 의하면 70년대 이전의 그의 지식을 풀어놓는 글은 꽤 신뢰할 만하다.


여하튼 그런 그가 한겨레에 박정희가 개혁이라고 빼들었던 칼인 유신이라는 것에 대해 파고들어 끄적이고 있다. 한겨레의 뉴스에 꽤 실망했었기 때문이었나? 한홍구의 글이 실렸던 사실을 오늘까지 모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글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이니 내용을 이야기 하도록 하자.

오노와 박정희는 '부자관계'였단 말이냐 - 한겨레,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4편)

박정희가 꺼내들었던 유신이 원래는 일본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에서 따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 중에 많은이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한홍구는 이에 대한 반박의 증거로 당시에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의 말을 빌려 당시의 유신이 일본의 명치유신과 정신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박정희가 지은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보여준 명치유신에 대한 박정희 태도를 문제 삼으며, 명치유신과 박정희의 유신을 연계시킨다.  

더불어 당시 일본 자민당 부총재와 중의원 의장을 지낸 오노 반보쿠와의 관계가 박정희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인물이라는 점 또한 그 증거라고 이야기 한다. 이사람의 말을 문제 삼은 이유는 오노 반보쿠가 1960년에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주장되었던 대동아공영권에 대해 말했던 사실 때문이었다.

이 대동아공영권이란 한국, 일본, 대만을 합쳐놓고 이후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와 연합해 아세아연방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표면적인 주장은 이러 하지만 사실상 그런 포부로 감행되었던 일제강점기 시기와 대중국전쟁을 떠올려 볼때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인물과 극도록 가까운 박정희였기에 한홍구가 평가하는 대통령 박정희는 좋게 평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 박정희가 따라가려고 했다고 강력하게 추측되는 유신이라는 것도 좋게 보일리가 없다. 지금도 반일 감정이 남아있지만 2000년대 이전의 한국에서 일본을 좋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의 반국가적 행위였다. 따라서 당시(1960년대) 사회통념 때문에 시경에서 따왔다는 식으로 덮으려 했을 뿐 사실상 일본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의 도입했다는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한국사에 관한 학자들이 흔히 보이는 태도다. 이글에서 한홍구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고 있는데,  민족적 가치를 우선시 하면서 대중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뭐랄까? 자꾸 감정적인 평가를 먼저 내리고 당신도 따라와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할까?

당시에는 박정희의 유신이 일본의 명치유신을 따왔다고 하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2012년이라는 현재 시간에 이루어지는 평가에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는 한홍구가 더 냉정하게 진단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박정희의 제도들이 비록 일본의 것을 따왔지만 그나마 쓸만했던 것과 잘못했던 것들에 대한 평가 말이다. 물론 이어지는 글에서 당시 유신이라는 것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나타나리라 강하게 믿고는 있다. ㅡㅡ;;

한홍구가 한겨레에 쓴 유신과 오늘 4회는 그의 민족적 감정이 오히려 박정희에 대해 학자로써 냉철한 평가보다 단순히 민족적 반역자로만 몰고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참고로 2000년대를 전후로 한국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면,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정책으로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에게 일본은 따라해서도 안되고 무조건 싫어해야할 대상이었다. 때문에 2000년도 전에는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쉽게 매국노로 취급했었다.

재미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 전 부터 한국의 많은 방송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수입과 표절을 하고 있었다. 특히 1990년대에 한국 만화는 악독한 것으로 취급해 죽이는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TV방송으로는 일본 만화를 일본 것이 아닌 것 처럼 바꾸어 반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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