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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역사/역사잡담 (38)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트위터에 잡담식으로 조금 올린 건데, 글이 조금 길어져서 여기다 옮겨서 새로 적어본다. MBC예능에서 이스라엘 국경을 가는 프로가 방영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그냥 서로 죽고 죽이는 분쟁중이다' 정도로 정리하고 있었다. 뭐랄까. 우리가 TV뉴스를 보면서 정치권에 대한 뉴스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더 잘못한 쪽, 더 괴랄한 주장을 하는 쪽이 있는데 자칭 균형을 맞춘다면서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전달 보다 분쟁 중이란 것을 더 강조하는 보도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뭐 이건 TV란 매체가 가지는 한계일 수 밖에 없으니 크게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한 분석이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뭐 예능에서 그런걸 바라는 것..
클리앙에서 벌어진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을 보면서... 클리앙에서 활동은 안하지만 종종 눈팅을 하러간다. 이런 저런 인터넷 논쟁들이 벌어지고, 인터넷 이슈들이 모여드는 몇몇개의 커뮤니티 중 하나여서다. 그래서 그곳 게시판을 보고 있으면, 대중들의 상식과 요구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이트에서 논의되는 것이 모든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2017.01.02)은 클리앙에서 시끌시끌한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한다.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면서 이 떡밥이 나올 때 가장 깊이있는 논의가 되었던 곳은 오유의 역사게시판이었다. 그 때문에 나도 오유 역사게시판에선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꽤 신나게 떠들었더랬다. 그런데 대다수의 커뮤니티에선 이 떡밥이 떨어지..
뭐 이딴 것도 기사라고 쓰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이래서 역사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필요한데... 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뉴시스 기사 - 국정교과서 기자조선 퇴출은 식민사학 탓이다 기사의 내용은 축약하면 제목과 같다. 기자 조선이 역사서에서 빠진 이유가 식민사학 영향 탓이란 헛소리 말이다. 근데 웃긴건 이에 대한 주장을 역사 학자도 아닌 사람의 의견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 역사 학자도 아닌 이의 주장은 근거라 말하기엔 매우 부족한 이야기 뿐이고, 기자는 그의 의견 외에 다른 이의 조언 따위는 듣지 않고 기사를 썼다. 나는 이 기사가 검증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채 마구 써낸 글이라서 기사로써의 가치도 없고, 그 속에 반영된 주장은 역사적 논거로는 매우 부족하기에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
역사 교과서에 대한 국정화 확정고시가 당초 예고된 날보다 빠르게 고시되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원래 확정고시가 되기 전에 대중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자는 이유로 규정된 확정고시일이 48시간이나 앞당겨진 이유는 누가 뭐라해도 정부가 대중 의견 듣기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정부는 이 혼란을 빠르게 종식시키겠단 입장이긴 하다. 문제는 민주주의란 그런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체제다. 이런 혼란을 두고 볼 수 없는 정부라면 사실상 민주주의는 폐기한 정부란말이 된다. 굳이 다 나열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를 폐기한 듯한 행위를 여러번 해오긴 했지만 말이다. > 연합뉴스 보도 황교안의 말
처음엔 이 논의가 시작된 이유와 왜 박근혜정부가 이걸 지금 꺼냈는지 등등에 대한 분석까지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걸 쓰기 시작하면 관련된 글 링크도 걸어야 하고, 증명할 기사와 그에 대한 해석까지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 탓에 몇번 시도하다 그만 두었다. ㅜㅜ 자료를 모으고 체계적으로 글을 쓰기엔 요즘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아니 그보다는 글쓰기 자체에 많은 흥미를 잃은 탓이 크다. 꼬박꼬박 관련 뉴스는 챙겨보고 있으니 말이다. 원래 잡담으로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도.... 내 블로그에선 역사와 관련된 주제로 누군가와 논쟁(?)을 한 적이 없는데, 역사관련 커뮤니티에선 종종 논쟁을 벌인적이 있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그런 논쟁에 뛰어드는 사람 중에 역사에 대한 공..
몽골의 고려를 향한 공격은 1231년부터 시작됩니다. 중간 중간 몇번의 외교적 접근 및 고려의 패배를 인정한 조약이 있었지만, 1273년에가서야 고려가하는 몽골을 향한 저항이 완전히 끝나게 되지요. 고려정부는 사실상 최씨정권이 무너지면서 항복한 것과 마찬가지지만요. 어렵게 이어오던 조직적 저항은 1273년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정벌되면서 끝난 것입니다. 고려를 이렇게 오랜시간 괴롭히고 결국 굴복시킨 몽골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간단하게 알아보고 가도록 하죠. 몽골 이전에 고려를 괴롭히던 여진족의 나라인 금이 12세기 후반이 되면 점차 무너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몽골어로 쇠로만든 인간이란 뜻의 테무진이 몽골족 내부를 1187년에 통일 하죠. 이 통일 이후 테무진은 칭기즈칸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칭..
앞선 글을 통해서 고려가 어떻게 나라의 기틀을 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고려 사회의 모습과 고려란 나라의 구조를 두 편으로 살펴봤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은 신라를 망하게 한 지방의 세력가들인 호족을 어떻게 고려가 고려란 나라의 왕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느냐였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중앙집권화를 하지요. 중앙집권화는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호족들이 버티고 있는 각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는 것은 중앙집권화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지요. 이렇게 하기위해 처음에 왕건은 호족들의 딸들과 결혼을 하는 혼인 정책을 펼치지요. 그리고 이후 후대 왕들이 당나라의 조직체계를 받아들이면서 호족을 중앙 관료로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물론 중간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도 있었구요. 그런데 이러..
우선 나라의 뼈대가 되는 중앙 정치제도 먼저 살펴보도록하죠. 고려는 당나라가 쓰던 3성 6부제를 들여와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에 맞춰서 2성 6부로 만들어버리지요. 당나라의 3성은 중서성과 문하성, 상서성으로 구성되는데요. 고려에서는 이중에 중서성과 문하성을 합쳐버립니다. 형식적으로 합쳐진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독립된 기구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서성이 중서문하성 밑에 예속된 형태를 띄게 됩니다. 상서성 아래에 6부가 있는데요. 이(吏),병(兵),호(戶),형(刑),예(禮),공(工)의 순서로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6부가 쓰이지요. 이부들은 지금으로치면 장관들이 있는 행정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중서문하성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던 곳은 중추원이라는 곳입니다. 주된 일은..
고려시대는 보통 크게 세 덩어리로 구분이 됩니다. 처음 한덩이는 후삼국을 정리하고 왕건이 고려를 세운 시기부터 왕권이 강해지고 그 왕권에 기대어 성장한 문벌귀족들의 시대지요. 이번에 다룰 부분이 바로 이 덩어리의 시대구요. 다음은 이런 문벌귀족들 때문에 홀대받던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고려란 나라를 뒤집어버리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무신정권의 시대입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찬양되는 칼잡이들의 무용담이 많은 시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덩어리 시대는 세계에 엄청난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후손이 중국 대륙에 세운 원나라의 침공과 간섭기 입니다. 앞선 시대와 달리 고려시대부터는 실재하는 자료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양이 많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ㅜㅜ 뭘 넣고 빼야할지 정신없어지는 시기기도 하지..
신라를 시기별로 나누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둘다 무열왕(김춘추)를 중심으로 나누는데요. 하나는 무열왕이 되기 전의 신라와 무열왕과 그 직계자손들이 왕으로 있었던 신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열왕 계열이 아닌 왕들과 무너질 때까지 나누지요. 삼국사기에서 이렇게 나누었는데요. 무열왕 전 시대를 상대, 무열왕의 직계자손들이 왕을 하던 시대를 중대, 무열왕이 아닌 자손들이 왕을 하던 시대를 하대라고 합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는 좀 다르게 분류합니다. 신라가 시작하던 시기에서 지증왕까지를 상고라하고 지증왕이후 법흥왕부터 진덕여왕까지 그러니까 무열왕 전까 시대를 중고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무열왕부터 신라 멸망까지 하고라고 합니다. 뭔가 정신없어 보이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무열왕이 시대를 구분..
6세기에 엄청난 성장을 하고 7세기에 신라는 당이라는 거대한 중국대륙의 국가의 힘을 빌어 한반도에 있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한반도 전역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요. 애초에 어떤 약속을 했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한반도에 대한 완전한 통치를 원했으니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는 백제 땅에 다섯개의 도독부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웅진도독부 하나만 남기지만 도독부의 설치는 백제 땅을 당의 영토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서 당나라는 1만명의 군사를 사비성에 배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라는 당나라의 손을 계속 잡..
지금부터 슬픈(?) 결말로 달려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고구려와 백제 멸망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죠. 굳이 슬플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해당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슬프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ㅡㅡ;; 고구려와 중국대륙 국가들과의 싸움 이야기를 먼저 하도록 하죠. 5세기에 커다란 제국을 만들었던 고구려는 6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됩니다. 앞선 글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신라의 확장 때문이었는데요. 그 강력했던 고구려가 왜 신라에게 이렇게까지 밀려서 올라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 있던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를 열심히 치고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고구려는 한강을 중심으로한 지역을 빼았기고 동쪽으로는 함경도까지 밀려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
기원 전부터 기원 후 3~4세기에 활약하던 백제나 고구려와는 다르게 신라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영향인지 혹은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했던 것인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발전이 늦어진만큼 신라는 6세기에 들어서면서 매우 강해집니다. 신라가 실질적으로 엄청난 발전 한 것은 6세기의 지증왕 때입니다. 지증왕은 500년에 즉위해 514년까지 신라를 다스렸죠. 신라가 발전 바탕에는 농업 발달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증왕은 502년에 소를 이용하면서 농사를 하는 우경을 권장합니다. 이에 신라 각지에서 소를 이용한 농사가 시작됩니다. 또한 이때가 되서야 신라에서도 벼가 일반적인 작물이 되었습니다. 나라 경제의 근본이 되는 식량 생산의 증대는 결국 강력한 국가의 탄생으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보다더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던 만큼 이후에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요. 그럼에도 백제는 나름대로 체제정비와 외교 등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아오려고 노력했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는 기원 후 3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초고왕때 백제는 앞선 글로 설명했던 무시무시한 고구려 땅으로 쳐들어가면서 영토확장을 했었죠.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고구려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단단하게 만들고 본격적으로 영토확장에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게 됩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는 433년에 동맹을 맺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서로 진귀한 물품을 주고 받고 고구려의 침입에..
이번에는 고구려의 전성기와 사회구조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구려는 기원 후 1세기 후반 쯤인 태조왕대에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고 기원 후 4세기 후반인 소수림왕대에는 국내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습니다. 이 노력을 바탕으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광활한 영토를 점령하러 다닐 수 있게 되었죠. 광개토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광개토왕은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해 요동으로 진출을 할 수 있었고 동북쪽으로는 숙신을 복속시켜서 만주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만주와 연해주쯤 되는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백제의 근초고왕때 입은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는 듯이 한반도 서쪽으로는 임진강까지 진출했고, 중부지역의 경우는 한강 상류까지 나아갔다고 합니다. 거기다 ..
오늘의유머에서 고리독터님이 올리신 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원본글 링크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72286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어서 생긴 고민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였습니다. 나라별로 묶어버릴지 아니면, 연도순으로 묶어버릴지 말이지요. 고등학교 교과서는 양이 줄어서 한꺼번에 주르륵 설명하고 끝나기 때문에 큰 참고가 안되더군요. 그래서 결국 한국사통론이 묶어내는 것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커다란 덩어리로 고대국가의 형성, 삼국의 전성기, 통일신라와 발해 뭐 이런식으로요. 아마 삼국의 전성기는 나라별로 따로 해야 될테지만요. ^^;; 국가 체제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앞선 글에서 군장국가, 초기국가, 고대국가의 형태로 설명했었는데요. 초기국가 단계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연맹국가로 불리고 있더군요. 일단은 초기국가로 통일해서 쓰고 다음 버전에서는 이 용어를 같이 사용하는 방..
고조선이 점차 국력이 떨어져가던 시기에 각지에서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삼국시대라 부르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는 국가에 비하면 국가라고 부르기엔 많이 모자라긴 하지만요. 단순한 족장들의 모임에서 여러 족장들을 대표하는 군장이 나타나고 하나의 나라의 모습을 처음 갖춘 것이 고조선입니다. 이후 비슷한 모습으로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에서 국가의 모습이 갖춰집니다. 국가의 발전 단계 정확한 분류는 될 수 없지만 간략하게 나눠보자면, 여러 족장들 중 대표 군장이 존재하는 나라를 보통 군장국가라고 부릅니다. 이 군장국가들의 특징은 군장 밑의 각 부족의 족장들의 힘이 너무 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군장국가 보다 군장사회로 부르는데요. 일단 여기서는 군장국가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고조선입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쓸데없이 신경쓸 것이 많은 시기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한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끝내고 있습니다. 교과과정의 변화 때문이라 어쩔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 글은 고등학생들의 시험을 위한 글이 아니니 좀 길게 써보도록 하죠. 고조선이란 단어 먼저 설명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조선은 그 단어 자체로 부르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저 나중에 나올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란 나라와 구분지어서 이야기해야 되다보니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옛날 조선 혹은 오래된 조선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죠. 앞서 청동기와 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지배자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 했었습니다. 곳곳의 지배자들은 강해진 힘을 바탕으..
드디어 청동기입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 하려고 하니 예민해질 수 밖에 없네요. 이유는 청동기와 고조선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 때문입니다. 다들 상식처럼 알고 계시겠지만 고조선은 청동기시대에 형성된 국가입니다. 그래서 청동기시대를 이야기 하면 고조선을 빼놓을 수가 없죠. 또한 철기는 고조선 이후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맞물려 있구요. 그럼에도 분리해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고조선에 대한 정의와 설명 때문입니다. 신화와 역사 사이의 문제도 있구요. ^^;; 여하튼 이번 글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청동기와 철기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왠지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앞서 정리했던 신석기시대에서 한반도에서의 청동기 시작 시기를 약 기원전 1000년으로 본다고 설명했었습니다...
ㅡㅡ;;; 신석기에 대해 정리하면서도 시작되는 문제는 역시 연대에 대한 것이네요. 한반도에서 신석기가 언제 시작되었느냐에 대한 문제는 고등학교 교과서와 한국사통론 사이에 차이가 좀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한국사통론이 1996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것입니다. 참고하고 있는 오래된 국사교과서가 7차교육과정용이라 2002년에 제작된 것인데, 2010년에 새로 도입된 다른 국사교과서와 똑같은 시간을 지칭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1996년과 2002년사이에 한국 고대사의 연구 실적의 영향인줄 알았지만... 유심히 살펴보니 그 문제는 아닌 듯 하더군요. ㅜㅜ 고등학교 교과서들은 약 기원전 8000년전 쯤에 신석기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한국사통론에서는 약 기원전 6000년전 쯤으로 잡고 있습니다. 무..
일단 인류의 출현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기원부터 책마다 이야기가 엇갈리네요. ㅜㅜ 왜 시작부터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위키백과에는 인류의 시작을 240만 년 전과 230만 년 전 사이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7차 교육과정에서는 인류의 출현을 350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사이로 잡고 있습니다.2010년에 검증받은 천재교육의 한국사에서는 이 시기를 무려 500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사이로 잡고 있었구요.한국사통론의 경우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 한국사에 있어서 썩 중요하지는 않은 부분이라 그냥 넘겨도 상관없지만 왠지 자꾸 신경 쓰이더군요. ㅡㅡ;; 한반도에서 구석기인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약 70만 년 전 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
2014.07.12. 이스라엘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 돌입했다. 아니 실질적인 군사력으로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살육전을 벌이는 것이다. 일방적인 학살과 비슷한 양상이다. 사건의 발달은 이스라엘의 아이들 3명이 납치된 뒤 살해당하면서였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배후 조직으로 지정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력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에 하마스는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아이 한명을 납치하고 살해한 사건 등으로 이어졌다. 이 단편적인 사건만 보면, 팔레스타인 쪽의 잘못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건 사고가 이번 한 번 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국가를 세우면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것은 각자 판단의 몫이지만 팔레..
원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답글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대부분의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시간들여 쓴 글인지라 가져왔습니다. ^^;; 문제제기의 원인이 된 글은 굳이 보지않아도 상관없어서 제가 쓴 답글만 가져왔습니다.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마치 누군가가 역사를 잘 아시는 것처럼 댓글로 강의 하시기에 역사학의 기본과 더불어 역사게시판 게시물이 항상 시끄러운지를 설명하는 글을 적습니다. 원래 다른 분 글의 댓글로 썼었는데, 양이 많아지고 본의 아니게 해당 게시물은 작성자의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콜로세움(인터넷 댓글 싸움)이 세워져서 이렇게 새로 글을 팠습니다. ㅜㅜ 현대역사는 실증주의에 기반한 역사가 맞습니다. 그것이 과학적인 검증 방법에 의해서 나타난 방법이지요.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잘못된 역사 인식에 쉽게 넘어가고 또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글이라고 보시면 편합니다. ^^; 원래는 블로그에 쓰려했던 글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글입니다. 그래서 원래 제 블로그의 어투와 많이 다르지만 제 글입니다. 사실상 다와 요의 차이 뿐이긴 하지만. ㅡㅡ;; 역사는 그 어느 나라나 어떤 민족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기록이고 유물일 뿐입니다. 역사학은 그런 유물과 기록을 통해서 과거의 일을 유추해보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역사를 자꾸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니까 대단해"라던지, "우리의 역사니까 이럴 리가 없어"라는 등등의 일들 말이지요. 그 대표적인 단체가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환국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상 교차검증 ..
이 이야기를 시사쪽으로 해야 할 지 아니면 역사쪽으로 해야할지 개인적으로 갈피가 잘 안잡히지만, 이미 오래된 사실을 다루고 있기에 그냥 역사 잡담이라 평하려고 한다. 위에 고종석이 언급한 월북한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서 써보려고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조선(남북한)의 지식인들이 북한으로 건너갔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그건 공산주의가 지향했던 낙원 때문이었다. 공산주의가 유럽에서 광풍을 일으키고 전 세계를 휩쓰는 이론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지향했던 낙원 때문이다. 이 낙원이 생겨난 이유는 17~18세기 유럽이 급격한 도시화와 자본주의가 부의 집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폐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도시의 노동자 였는데, 이들이 숫자는 많지만 부당함에 대항할 ..
전(前)근대적인 사상.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非)합리적인 생각이라는 뜻과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비꼼의 뜻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꼼의 뜻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비꼼의 뜻은 남아 있는데, 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가 그냥 나쁜 의미구나 하는 생각은 해도 "지랄을 한다"는 식의 비꼼의 의미는 서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문득 이제는 거의 유일하다 싶이 방문하게 되는 Konn님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장마가 계속되어 그런 것인지 이 단어를 봤을 때, 슬며시 딴지를 걸고 싶었다. 이건 모두 장마탓이다. ㅜㅜ 엄밀히 말하면 딴지는 아니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어서 쓴 것일 뿐이다라고 나는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ㅡㅡ;;; 발단(?..
역사 잡담 메뉴는 역사를 쉽게 재미나게 그리고 가볍게 이야기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는데, 그동안 끄적거려놓은 것을보니 영 재미없고 지루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쓰는 나도 많이 소홀이 했던 것도 있고... 한줄을 쓰든 두줄을 쓰든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볼까? 그런데 문제는 요즘 내가 역사와 관련된 책을 전혀 안읽는다는데 있다. 서점가서 열심히 이것저것 사고 싶은 책은 고르는데, 열심히 골라서 구입하고 나서는 읽는데 영 진도가 안나간다. 최근에 읽은 역사 관련 책은 라는 인문서적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 읽고 감상 같은 것을 쓰지도 않았다. ㅡㅡ;; 그 전에 읽은 건 라고 일본역사에 대한 통사격인 책인데, 엉성한 번역 탓인지 아니면 일본역사에 대한 기본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
이건 괜한 트집이다. 왜냐하면 어떤 방법이 되었든 역사라는 것을 TV에서 다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시기며 시절인 탓이다. 2013년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역사를 다루어줬다. 그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나는 안타까워했다. 멤버들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서 준비했어야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었다. 특히 한국사를 이야기 하면서 민족주의에 기대어 이야기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한국사에 대한 관심을 끌기에 그것만한 특효약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건 결국 한국 교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예능에서 까지 답습하고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빨리, 일단 외우고 보자가 만들어낸 역사교육의 폐해가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가 아니라 외우는 역사로 만들고, 다른..
이건 뭐... 잡담식 비판이기에 느낌 이야기만 하련다. 역사학계에서 대표적인 골칫거리들이 몇개 있다. 하나는 환단고기고 다른 하나는 이덕일이다. 환단고기는 그 출처 자체가 믿을 수 없는 것이기에 말도 안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쉽게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덕일은 참... 이덕일은 재능있는 역사 소설가였다. 역사를 배경으로하는 소설을 참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재미없다고 그의 책을 쉽게 덮어버렸지만, 소설가였던 시절 대중들에게 그는 역사를 참 신나게 풀어주는 사람으로 평이 좋았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가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했다면, 아마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추앙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역사 학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