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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고대국가의 발판을 다진 삼국과 무너진 가야(ver 0.1) 본문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어서 생긴 고민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였습니다. 나라별로 묶어버릴지 아니면, 연도순으로 묶어버릴지 말이지요. 고등학교 교과서는 양이 줄어서 한꺼번에 주르륵 설명하고 끝나기 때문에 큰 참고가 안되더군요. 그래서 결국 한국사통론이 묶어내는 것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커다란 덩어리로 고대국가의 형성, 삼국의 전성기, 통일신라와 발해 뭐 이런식으로요. 아마 삼국의 전성기는 나라별로 따로 해야 될테지만요. ^^;;
국가 체제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앞선 글에서 군장국가, 초기국가, 고대국가의 형태로 설명했었는데요. 초기국가 단계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연맹국가로 불리고 있더군요. 일단은 초기국가로 통일해서 쓰고 다음 버전에서는 이 용어를 같이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여기서 주로 다뤄지는 고대국가는 중앙집권화가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왕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죠. 앞서 연맹국가와 초기국가의 용어 선택의 고민을 한 이유도 초기국가 단계가 사실상 군장들의 연맹의 수준과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대국가 체제가 되면, 연맹이 아닌 진정한 왕과 신하의 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초기국가에선 신하라기보다는 동지의 의미가 컸죠.
이를 위해서 삼국의 왕들은 신하들의 체계를 만들게 됩니다. 신하들에게 체계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왕이 신하들을 다루는데 효율적이 되고 말의 권위가 세진다는 뜻이 됩니다. 군대의 계급을 상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같은 민간인들의 대표였는데, 쭉 줄을 세우더니 군인 같이 계급을 부여해서 명령체계를 잡은 것이죠.
또한 왕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즉 혈통 이외에는 왕의 자리를 넘볼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초기국가에서는 말이 왕이지 왕이 잘못하면 군장들이 회의해서 쫒아내거나 죽이기까지 했거든요.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킵니다. 네,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불교가 그 일을 하게 됩니다. 한때 유행했던 말 그대로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된 것이지요.
이렇게 해놓아야 "왕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구나"하고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삼국의 이야기를 하기 앞서 간략하게 중국대륙의 역사 흐름을 보고 가도록 하죠.
진(진시황의 나라) → 한(유방의나라) → 신(잠깐 왕망이 왕이됨) → 후한(유씨들의 두번째 나라) → 삼국(위촉오의 삼국연의의 배경시대) → 5호16국(혼란의 중국대륙) → 수(고구려를 괴롭히다 망한나라) → 당(신라에게 쌀배달 시킨나라)
그럼 이제 고대국가의 모습을 삼국이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고 고대국가가 되지 못한 가야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고구려는 기원 전 1세기에 초기국가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고대국가의 틀을 잡게된 것은 기원 후 1세기에 들어서 입니다. 고대국가의 면모를 처음 보여준 것은 태조왕에 의해서 인데요. 태조왕의 이름이 괜히 태조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태조 왕건이나 태조 이성계처럼 고구려의 태조왕도 나라의 기반을 세우는데 많은 일을 했기에 태조왕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여하튼 태조왕의 업적은 바로 영토 확장이었습니다. 태조왕이 즉위한지 4년이 되던 해, 즉 기원 후 56년에 태조왕은 옥저를 복속시킵니다. 그리고 태조왕은 105년에 본격적으로 요동을 공략하게 됩니다. 그래서 6개의 현을 빼앗습니다. 121년에는 현도군과 요동군을 공격해서 요동태수 채풍을 붙잡아 죽이고 2000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기도 하죠. 그 다음해인 122년에는 기병 1만을 데리고 현도성을 포위 공격했지만 부여의 방해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부여는 강력했습니다. 한나라가 날로 강해지는 고구려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172년인 신도왕 시기에 고구려를 치러왔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각하던 중에 섬멸을 당합니다.
이후 고국천왕은 행정 개편을 손보기 시작합니다. 군장출신들에게 관리되었다고 추측되는 계루부, 절로부, 순노부, 관노부, 소노부를 내부, 북부, 동부, 남부, 서부라는 이름으로 바꾸죠. 고유지역이름이 아니라 방향으로 바꾼 것은 그만큼 자치되는 지역에 왕의 영향력이 세졌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왕이 "니네 지역 부르기 불편하니까 동서남북으로 바꿔"라고 해도 지역 관리하던 사람들이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또한 이 때 힘을 이용해 왕위를 형제에게 물려주던 방식에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됩니다. 게다가 진대법을 시행해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국가의 곡물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값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대중을 위한 복지제도 하나 도입하려고 해도 말만 많고 쉽게 못하는 것과 대비되지요. ㅡㅡ;; 그만큼 왕권이 셌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고구려도 위태로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동천왕 때입니다. 242년은 중국이 삼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때였습니다. 고구려는 그 중 오나라와 친밀하게 지냈죠. 그래서 고구려는 당시 위나라의 영향권 아래 있던 낙랑과 위나라가 연결되는 서안평을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오히려 위나라의 관구검에게 패해 수도까지 함락되버리는 쓰라린 패배를 겪게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지요. 삼국은 무너졌고 5호 16국이 중국 대륙에 들어서게 됩니다. 자연히 요동지역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기회를 틈타 313년에 미천왕은 서안평 공략을 시작으로 낙랑군까지 무너뜨려 버립니다. 이때가 되서야 한나라 때 들어왔던 세력을 모두 몰아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시간상으로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지만, 이렇게 회복 되던 것도 잠시였습니다. 중국의 5호 16국 중의 후연과 손을 잡은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치게 됩니다. 371년에 결국 이 공격으로 전장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게 됩니다.
다음 왕이 된 소수림왕은 국가 내부를 튼튼히 만드는 기반을 닦습니다. 372년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불교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또한 태학을 설치해 유학을 보급하고 문화를 탄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73년에 법을 반포함으로 인해서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모두 갖추게 됩니다. 뒤에 나올 광개토대왕의 무지막지한 영토 전쟁은 이런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전성기를 정리할 때 이야기 하도록하죠.
백제는 마한의 여러 군장 국가 중 백제국으로부터 발전된 국가 입니다. 기원 전후에 초기국가를 이룩하고, 3세기 중엽에 고대국가로 우뚝서게 되는데요. 246년 그러니까 고이왕 즉위 13년에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해 대방군 태수를 전사 시킬정도로 군사력이 상당했습니다. 260년에는 내부적 체계를 확실하게 하려고 신하들의 체계를 재편하고 신하들의 옷 색을 지정합니다. 이때 6좌평도 생기게 됩니다.
백제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 한 것은 근초고왕 때 입니다. 근초고왕은 346~375년 동안 제위해 있었는데요. 우선 영토를 넓게 확장시켰습니다. 남쪽으로는 마한의 나머지 땅을 정복해 남해안까지 진출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쳐서 고국원왕을 전사케 할 정도였습니다. 중국의 동진과 더불어 일본의 왜와 교섭했었지요. 부자상속에 의한 왕위계승에 대한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384년 침류왕 1년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상 근초고왕 때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하게 되는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의 전성기 이야기 할 때 하겠습니다. 삼국의 전성기라지만 사실상 백제는 도약의 기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라는 군장국가였던 사로국에 의해 성장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보다 늦은 기원 후 1세기 후반 쯤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초기국가의 모습도 1세기 말쯤이 되서야 갖춰지게 되지요. 삼국사기에는 유리왕 9년인 기원후 37년에 6촌으로 불리던 행정구역을 6부로 바꾸고, 17관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만의 기록이라서 그보다는 17관등의 모체가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신라가 고대국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물왕 때라고 합니다. 내물왕은 356년에서 402년까지 재위에 있었지요. 내물왕의 업적은 낙동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보했고, 박, 석, 김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하던 체제를 없애버리고 김씨가 왕위를 독점 세습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계승자의 뜻이 있던 이사금이란 단어 대신에 마립간이란 단어를 왕을 말하는 호칭으로 쓰게 됩니다. 하지만 국력이 약해 내물왕 재위 기간에 중국에 있는 전진으로 사신을 보낼 때 고구려 사신의 도움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정치, 군사, 외교적인 부분을 고구려에게 의지하고 있었지요.
눌지왕 때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눌지왕의 재위기간은 417년에서 458년 사이입니다. 그래서 눌지왕이 선택한 것은 바로 백제와의 동맹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위세에 대항하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죠. 소지왕 재위기간(475~500년)에 신라는 역로를 수리하고 교역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경제적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증왕이 즉위하고 앞서 다져진 것을 바탕으로 이후 엄청난 일들을 하게 됩니다.
한편, 가야는 위에 이야기 된 고구려, 백제, 신라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낙동강 하류지방의 변한 12국은 고조선의 위에세 눌려서 힘을 못쓰던 진왕의 영향에서 일찍이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김해지방의 구야국을 중심으로 가야제국이 되었습니다. 그 중 본가야는 일찍이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고 벼농사를 발달시켜 가야연맹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에 걸쳐 내부의 세력관계에 변동이 일어났고,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남부까지 쳐내려와 백제와 가야 지방에 큰 타격을 주었죠. 신라는 그와중에 낙동강 동부지역의 가야소국들을 병합하게 됩니다. 결국 가야연맹은 고령지방의 대가야로 맹주가 바뀌게 됩니다.
일찍이 한 군현과 남쪽에 있던 왜(일본)와 더불어 이웃한 국가들과의 교역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강력한 이웃 세력들 때문에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400년에는 고구려군이 신라에 침임한 왜군을 추격하면서 영토를 침범하기도 했구요.
결국 본가야가 신라 법흥왕의 침략을 받아 532년 멸망하고, 562년에 대가야마저 신라 진흥왕에게 정복당함으로써 신라에 병합되고, 아쉽게 한반도에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상이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게 된 이야기와 아쉽게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가야에 대한 정리 및 요약 이야기였습니다.
참고로 한 책은
2010년 검정을 통과한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10년 검정을 통과한 비상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02년 제작된 고등학교 국사
1996년 제작된 한국사통론 4판
이렇게 입니다.
위 정리된 내용은 사실상 한국사통론에서 정리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ㅜㅜ 나름 줄이고 줄이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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