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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역사상 최고 미녀 아들의 일생 본문

역사/게임으로 보는 대항해시대

역사상 최고 미녀 아들의 일생

무량수won 2010. 8. 27. 17:39





오늘의 모험은 [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 입니다.



클레오파트라라... 코가 1Cm만 달랐어도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의 주인공이며, 우유로 목욕을 했다고 하며, 역사상 미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여인을 말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에게 아들이 있었다고? 이게 무슨일이지?

클레오파트라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왠지 익숙치 않네요. 어서 알아보러 가봐야겠습니다.






" 뭐 무량수라고? 나는 자네 이름을 처음 듣는데? "
"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마르세이유에서만 생활했었는데, 아테네에서 와서 그 버릇을 못버렸네요. ^^;;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무량수라고 하는 모험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


" 흥, 신출내기 모험가구만. 자네에게 줄 일은 없으니 돌아가게나 "
" 중개인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ㅜㅜ 한번 믿고 맡겨봐주세요. 이렇게 보여도 마르세이유에서는 꽤나 알아주던 모험가였다구요. ^^;; "


" 요즘 사람도 없는데, 일하겠다는 사람을 내쫒아낼수도 없고... 그럼 한번 속는셈 치고 맡겨보지. 하지만 이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만약 해낸다면, 자네를 계속 쓰겠지만 실패한다면 다시는 얼씬 거리지 말아야 할 걸세. 알아들었나? "

" 네 알겠습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해낼테니 맡겨만 주세요. "





알렉산드리아는?

후... 새로운 곳에서는 그동안 하던 것이 안통하는 군요. 다행이도 일을 얻어냈으니 한 번 알아봐야겠군요. 우선 클레오파트라가 살던 이집트로 가야 되는군요. 알렉산드리아라... 여행해야하는 알렉산드리아가 어디 있는지 먼저 좀 알아보고 갈까요?





분홍색이 이번에 여행해야 하는 항해길이구요. 녹색이 구글어스에서 본 알렉산드리아의 위치입니다. 게임속에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데, 그건 게임으로 만드느라 단순화 시키는 바람에 생기는 차이라고 넘기면 편합니다. ^^;;;


일단 알렉산드리아는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과 깊은 관계를 가진 도시입니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 만들어놓은 대표적인 도시인데요. 지금은 이집트에서 카이로 다음으로 두번 째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도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334년쯤이라고 하네요.

이곳에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에 대한 단서가 있다고 하니 어서 가봐야 겠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은 누구인가?



" 학자님 이곳에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저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들었어요. ^^;; "
" 네 맞습니다. 줄리어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아들이 있었답니다. "





















어허헛... 사실이었군요. 아들의 이름은 카이사리온이고 프톨레마이오스 15세라고 합니다.

우선 유물을 찾아나서기 전에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리온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가도록 하죠. 일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정식 명칭이 클레오파트라 7세 입니다. 7번째 클레오파트라라고 하는 의미도 되는데요. 보통 클레오파트라가 지배했던 이집트 왕족을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라고 합니다. 그중에 남자의 통치자의 경우는 프톨레마이오스 라고 부르고 여자는 클레오파트라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붙는 1세, 2세 같은 것은 후대 학자들이 구분짓기 쉽게 붙여둔 숫자 랍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클레오파트라는 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7번째 여성통치자쯤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카이사리온은 15번째 남자통치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프톨레마이오스 15세면 그냥 말하면 되는 것을 왜 카이사리온이라고 부를까요?

그것은 그리스식 구별법으로 그리스 왕가들은 별칭을 붙여서 왕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왕이란 칭호가 프톨레마이오스고 별칭은 왕의 또다른 이름인 셈이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용을 추가하자면, 여자통치자 이름중에는 아르시노에와 베레니체란 이름도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리온의 일생


그럼 이 카이사리온(caesarion)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기원전 47년에 태어난 카이사리온은 시저의 손님 자격으로 기원전 46년에서 44년까지 로마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저가 정치적 암투에 의해서 살해당하자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이집트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집트에 돌아와서 클레오파트라는 3살 짜리 아들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합니다. 이건 한마디로 후계를 확실히 해놓겠다는 의미입니다. 설마 3살인 아이에게 직접 통치하라고 시켰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 있는건 아니지요?? ㅡㅡ;;;

시저의 죽음 이후 로마는 꽤 혼란스러워졌는데요. 시저의 후계자리가 카이사리온에게 온게 아니라 시저의 조카였으며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에게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시저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와 시저의 측근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공동통치 기간이 이어지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성장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건너와서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게 됩니다.

아마도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 세력을 등에 업고 로마를 온전히 자신의 손에 넣으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라 추측이 되지만 어쩌면, 그냥 견제용으로 그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으려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뭐 어찌되었든 그가 이집트로 건너가서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력을 배경으로 만든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마르쿠스와 옥타비아누스간에 전쟁이 발생합니다. 로마에게는 내전이었는데요. 이때 이집트는 당연히 마르쿠스를 지원했고, 결과는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 전쟁이후로 마르쿠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약 18일 정도 이제 17살이 된 카이사리온이 이집트의 왕으로서 혼자 통치를 하지만, 결국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죽게 되고 이집트는 전쟁의 전리품으로 옥타비아누스의 소유가 됩니다. 이것이 기원전 30년에 일입니다.






역사학에는 만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포스팅은 역사학을 하자는게 아니니까요. 저는 만약에 이 카이사리온이 시저의 뒤를 잇고,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면 세계의 역사가 전혀 다르게 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

상상은 상상으로 받아들이세요. ㅋㅋ

왼쪽에 있는 동상 사진은 구글에서 찾아낸 것인데, 실제의 모습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 제가 영어가 좀 짧아서리... 아마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왼쪽에 보여지는 것이 실제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조각한 것입니다. 덴데라 신전에 조각 되어 있다고 합니다.

덴데라 신전에 관한 사진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 덴데라신전 <


























다 알아보았으니 이제 게임속에서는 어찌 나오는지 볼까요?

열심히 사막을 돌아다녔더니 오아시스 주변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이건 여담인데요. 미국 드라마 중에 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거기서는 카이사리온이 다른 사람의 아이라는 설정이.... 실제로 카이사리온이 시저의 아이였는지에 대한 여부는 미스테리랍니다. ^^;;;

유전자 감별을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거원...

여하튼 여러모로 불쌍한 카이사리온입니다.





아래는 참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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