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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시대에 일본의 도움이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본문

역사

일제강점시대에 일본의 도움이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무량수won 2010. 8. 31. 03:09





가끔씩 벌어지는 일이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경제가 발전했으니 모두 박정희 덕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같은 논리로 일제 시대에 개화가 되었으니 모든 것이 일본의 덕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 논리라면, 누군가 이글루스에서 댓글로 써놓은 것 처럼 인터넷을 우리가 쓸수 있는 것은 모두 김대중 때문이란 결론이 나온다. ㅡㅡ;;;;

정말 이런 이상한 논리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때 경제학을 하는 교수 몇명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발전은 모두 일본 덕분이었다면서, 증거자료로 당시의 경제지표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본이 강점 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개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의 성장이 있었겠느냐하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역사 관련된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것은 없다'라고.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교수님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위험한가하면, 만약이란 가정에 의해서 증거를 왜곡해서 해석하고 자기 뜻대로 이야기를 꾸며버리기 때문이다. 결코 인간이 객관적일수는 없고,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다른 과학과 같은 학문에 비해서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것이 역사라는 학문이다.

역사 교육을 받으러들어가는 자리에서 교수님들이 지겹도록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없다"라고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객관성을 갖추기 위함이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장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역사학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발전을 해서 지금의 한국이 잘살게 되었다는 식의 논리는 그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전문 학자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근현대사의 이런 잘못된 생각에 대한 반론을 보고 싶다면, 나는 강만길 교수의 "20세기 우리역사"를 추천한다. 조금 다행인것은 이 책은 대중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그럼 강만길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책은 강의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강의형식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에서 몇개 강의의 서문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의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여론 앞에서 두가지 점을 크게 선전했습니다. 하나는 조선인도 일본의 지배기구에 참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지배를 달게 받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일본이 한반도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생각과 선전은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지역이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일본인에 의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밝히려면 조선총독부의 통치기구는 어떻게 짜여 있었는지,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요사이 국내 학계의 일부에서도 박정희정권의 이른바 '개발독재'의 역사성을 인정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제의 '개발수탈'의 역사성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경제사학적 관점과 역사학적 관점에 차이가 있을수 있겠지만, 한 민족의 한 시대의 역사운영권을 다른 민족이 빼앗았다는 사실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침략목적에 의해 약간의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진 사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1920년대 '문화정치'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의 큰 분수령이었을 뿐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 지배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3·1운동 후 일제의 지배정책은 '문화정치'라는 이름의 민족분열정책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민족해방운동전선의 일부 우익세력이 타협주의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과연 '문화정치'의 본질이 무엇이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썼기에 민족해방운동전선의 일부가 이탈했는지, 또 그것의 민족사 내적 원인은 무엇이며, 타협노선으로 돌아선 일부 세력을 제외한 민족해방운동전선은 '문화정치'에 어떻게 대응해갔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민족사적으로 볼 때 일본에 지배당한 20세기 전반기는 근대적 민주주의 정치를 훈련해야 할 중요한 시기였지만, 조선민족은 주권을 잃었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일본은 전체 한반도 주민들에게 어떤 정치활동도 허용하지 않고 전체주의적 총독정치로 일관했으며, 극히 제한된 '자치제'를 실시한다는 핑계로 반민족세력을 양성했을 뿐입니다.


 '문화정치' 시기에 절대독립노선에서 이탈한 개량주의자들은 1930년대의 일제 파쇼체제 아래서는 반민족적 친일파가 되었고, 남한의 경우 이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집권세력으로 또 행정담당세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문화정치'의 여파가 해방 후 까지 계속 되는 불행한 역사가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 시대, 조선 민중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강행된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적 토지소유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지주에 아래에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도모하는 지주경영 때문에 조선농민들은 토지에서 쫓겨나가거나 농촌에 남았다 해도 농업노동자 내지 빈농층으로 전락해갔습니다.


 일제강점 기간 동안 조선에는 이른바 3대 빈민층이 양산되었습니다. 농촌빈민과 농촌에서 쫓겨난 화전민과 토막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가운데 농촌빈민과 화전민은 일제강점 시대 이전에도 일부있었지만, 토막민은 전적으로 일제시대에 양상된 빈민층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농촌빈민이나 화전민이라 해도 일제강점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양과 질에서 모두 전혀 달랐습니다.

 
 강점 이후 식민지자보주의의 소산물로서 그 수도 급증했던 것입니다. 이들 빈민층의 생활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가 낳은 정직한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은 왜 실시되었을까요?

  일제강점 기간에 이른바 신민지 자본주의가 어느정도 발달했는가, 그것이 역사적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제국주의 국가가 남의 나라나 땅을 식민지로 만드는 일차적 목적은 물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원료공급지와 상품판매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만일 지배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이지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강점한 당초의 경제적 목적은 이 지역을 영원한 식량공금지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이나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은 바로 이 목적에서 실시되었지요.


 1930년대 이후 일본이 한반도에 약간의 공업시설을 세웠지만, 그것은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목적이 없었다면, 식량공급지로 한정하려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 본래의 식민지 경제정책은 그대로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산미증식계획'의 역사적 의미를 옳게 파악함으로써 식민지 경제정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면, 식민지 경제정책이 목적은 침략적이었다 해도 그 결과는 일정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식의 그릇된 역사인식을 불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만길의 현대사 강의 20세기우리역사 - 강만길 지음 - 창비 2009. 증보판






내가 이렇게 소개한다고 해서 이책에 대해서 혹은 이 저자에 대해서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반대하 부분이 있지만 나는 이책 만큼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쉽고 자세하게 쓰여진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조금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일제강점기에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으니 일본이 고마운 것이다라는 식으로 논리를 몰고가는 것은 지극히 결론적인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과정이 어찌되었고 그 때문에 무엇이 나빠졌는지 살펴보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에 이렇게 안했다면, 당신들은 모두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서있을 수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그거을 어찌 증명할 수 있고, 어찌 확신할 수가 있을까?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비가 한번 펄럭였을 뿐인데 건너편에서는 태풍이 일었다식의 이야기인데, 사람의 인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어떤 작은일이 어찌 작용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 쉽게 알아 맞출수 있다면, 기상청의 예보는 절대 틀려서는 안된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학을 하는 교수들이 만약에라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일본의 강점에 의해서 조선이 외국에게 전적으로 개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룬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일본 때문에 경제성장을 이뤘기에 그들을 구원자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자주 이야기하듯이 만약에 시대적 흐름이었기 때문에 저절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오히려 더 좋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막은 것이라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본이 발전을 시켜주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는 결론을 가지고 주장을 하고 그 주장에 맞춰서 자료를 찾아가기 때문에 자료를 왜곡한다는데에 있다. 이들은 결론만을 중시하게 된 사회에서 나타난 사생아들인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문제가 있지만 결국 이들을 만들어낸 것은, 결론만을 중시하고 과정을 무시해버리는 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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