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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기원 전부터 기원 후 3~4세기에 활약하던 백제나 고구려와는 다르게 신라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영향인지 혹은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했던 것인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발전이 늦어진만큼 신라는 6세기에 들어서면서 매우 강해집니다. 신라가 실질적으로 엄청난 발전 한 것은 6세기의 지증왕 때입니다. 지증왕은 500년에 즉위해 514년까지 신라를 다스렸죠. 신라가 발전 바탕에는 농업 발달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증왕은 502년에 소를 이용하면서 농사를 하는 우경을 권장합니다. 이에 신라 각지에서 소를 이용한 농사가 시작됩니다. 또한 이때가 되서야 신라에서도 벼가 일반적인 작물이 되었습니다. 나라 경제의 근본이 되는 식량 생산의 증대는 결국 강력한 국가의 탄생으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보다더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빠르게 전성기를 맞이했던 만큼 이후에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요. 그럼에도 백제는 나름대로 체제정비와 외교 등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아오려고 노력했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는 기원 후 3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초고왕때 백제는 앞선 글로 설명했던 무시무시한 고구려 땅으로 쳐들어가면서 영토확장을 했었죠.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고구려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단단하게 만들고 본격적으로 영토확장에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게 됩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는 433년에 동맹을 맺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서로 진귀한 물품을 주고 받고 고구려의 침입에..
이번에는 고구려의 전성기와 사회구조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구려는 기원 후 1세기 후반 쯤인 태조왕대에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고 기원 후 4세기 후반인 소수림왕대에는 국내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습니다. 이 노력을 바탕으로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광활한 영토를 점령하러 다닐 수 있게 되었죠. 광개토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광개토왕은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해 요동으로 진출을 할 수 있었고 동북쪽으로는 숙신을 복속시켜서 만주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만주와 연해주쯤 되는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백제의 근초고왕때 입은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는 듯이 한반도 서쪽으로는 임진강까지 진출했고, 중부지역의 경우는 한강 상류까지 나아갔다고 합니다. 거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