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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토론 모임

긍정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무량수won 2013. 8. 30. 21:33

오랜만에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었다. "읽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읽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는 문제기는 하지만, 일단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읽기를 하려고 노력을 했다다시 말해 읽었다기 보다 읽으려 노력했다라는 것이 더 내 행동에 정확한 답이 될 것 같다.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공통 주제는 꽤 많은 부분에서 동의한다. 그래서 예전에 읽다가 "뭐 이런 쓰레기가 있어?"라고 내버리고 싶었던 책과는 다른 형태로 읽기 싫은 책이었다. 그 때 그 책은 내용면의 부실함도 부실함이었지만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뿐이었다. 그런 책과 비교한다면, 이 책은 동조할 것도 많고 읽을 만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지가 않았다

 

 

주된 내용은 미국 안에서 마치 신앙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무한 긍정론에 대해 태클을 거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긍정론을 상세히 설명해가면서, 그들이 말하는 무한 긍정론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저자 자신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주장에 제대로 된 반박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주장 방식은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이런 이야기 하는 얘들 웃기지 않냐?" 이런 식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들에 대해서 조롱하는 글 이상의 글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그저 꼴 보기 싫어서 "얘들 이상해!!"라고 외치는 수준이랄까??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내가 왜 이런 쓸데 없는 조롱 글을 보고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나쁘게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왜 이리도 세상의 모든 나쁜 일들을 끌어다가 긍정론 탓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책만 보고 있으면 긍정론 때문에 세상이 더욱 더 나쁜 곳으로 바뀐 것만 같다.

 

 

그가 제시한 긍정론의 폐해는 인정한다. 또한 미국에서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만큼 거대한 세력(?)화 되었다는 것 또한 동의하는 바다. 그것을 통해서 기득권 층이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고 이용해 먹는 것 또한 동의 한다.

 

하지만 기득권 층의 이용은 비단 긍정론 뿐 만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세상의 모든 철학 혹은 대중적인 종교 등등은 기득권들과 잘 붙어서 수적으로 열세인 기득권 층을 사상적으로 비 기득권 층으로부터 보호하고 옹호해왔다.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조선 시대의 성리학도 초기에는 기득권 층에 대한 비판적인 사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조선의 양반(조선 중기 이후의 기득권)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상으로 이용되었고, 중국 또한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불교도 처음 대중들에게 환호를 받을 때는 기득권층을 비판하면서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화가 된 이후에는 기득권 층과 짝짜꿍이 되어 오히려 기득권 층을 보호하는 식으로 변했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크리스트교도 그런 식으로 변했으며, 그들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개신교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아니 변했다기 보다는 이들이 이용 당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긍정론에 대한 비판은 그 초점이 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긍정론의 잘못으로 공격하기보다 그것을 자신들의 이득에 맞춰서 악용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더불어 긍정론은 비판을 한다면, 그들을 조롱하기보다 그들이 그 대신에 선택해야 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 등등의 해법도 같지 제시하는 것 또한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건 인터넷 곳곳에서 불고 있는 기독교에 관한 비판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보는데, 교리적으로 이상한 것은 어떤 종교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건 논리적인 오류일 수도 있고 모순됨 일 수도 있다. 그 논리적 오류나 모순이 있다고 종교를 비 논리적이기 때문에 존재하면 안 되는 악당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일까? 마치 인터넷 곳곳에서 말하듯 기독교를 믿는 다는 것을 죄처럼 만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건 아니라고 본다. 종교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의지가 되고 또한 인간적인 삶을 위한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는 좋은 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조건 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이런 교리 부분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정작 공격해야 할 것은 그 교리의 헛점을 악용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대형 교회들에 대한 비판을 놓쳐버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굳이 전쟁터를 크게 넓혀서 그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할 사람들을 일부러 더 피곤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긍정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긍정론은 꽤 큰 도움이 된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너는 희망이 없으니 죽어버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세계 곳곳이 도시화가 되고, 그로 인해 외로워지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긍정론은 어쩌면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끈을 내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주는 희망이란 단어를 가지고 자신의 뱃속과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악용하는 이들과 그 희망이란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과학을 과학이라고 속이는 사기꾼들에 대한 비판이 이뤄져야지 그런 희망 조차 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기독교의 교리에 모순됨과 비 논리적인 면을 꼬집는 것과 같이 꼬집으면서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놓치고 만다. 그래서 분명 잘못 이용하고 악용하는 사람들은 나타나는데 읽는 내내 그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사라지고 남는 건 긍정론 이상한 거야!”라는 생각만 남는다.

 

 

이 책을 읽기 싫어서 마치 그냥 책장을 넘기는 행위만을 연속했던 이유는 그 수 많은 글 속에 핵심은 빠진 채 주변을 빙빙 돌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달라서라기 보다는 내 생각과 지향점은 같았지만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하는 느낌이었다면 쉽게 이해가 되려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 과도하게 운동권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느낌이었다. 항상 운동권 사람들과 나는 정치적 지향점은 같았지만 왠지 그들과 이야기 하고 있으면 답답함이 느껴졌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운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이정도만 이야기 한다.

 

어쩌면 이 것도 이 책을 읽기에 가까운 읽기가 아니라 그저 책장 넘기기에 가까운 읽기를 하게 만든 이유기도 한 것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바로 책 읽기의 기한이었다. 독서토론 모임을 위한 책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꼭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귀차니즘과 같이 뒤섞였기에 나타난 짜증 탓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나가는 독서모임들은 모두 내가 주최자다. 주최자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못 읽더라도 읽어야만 하는 숙명이 있다. ㅜㅜ

 

이 글은 내가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그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재미없는 책을 다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었다고 제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읽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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