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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이야기

[717] 혼자 보는 영화

무량수won 2013. 11. 7. 09:57

알람이 울린다.

 

717. 영화 상영시간은 7 20. 극장 앞 커피숍에서 간단히 커피를 마신다. 일주일에 한 번 빠르게 퇴근하는 날이 한 번씩 있다. 요즘 내가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점이다. 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6시에 퇴근 하는 것이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행사였다. 뉴스에서 법으로 주당 40시간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건 나와는 상관 없는 세상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이 일하는 곳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일자리를 잃을래? 아니면 법은 무시되더라도 일을 할래라고 이야기 한다. 나만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옆 사람도 그렇고 앞 사람도 그렇고 길 건너 회사의 사람들도 비슷하다. 다들 말은 법을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사장님의 말 이다. 이렇게 저렇게 들은 소문으로는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영화 보러 와서 괜히 사회 탓을 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영화를 보러 왔고, 영화를 볼 꺼다. 영화보기는 내 생활의 유일한 사치다. 천원 이 천원이 아쉬운 생활이지만 간신히 나를 버티게 하는 사치다.

 

나는 주로 밤에 영화를 본다. 주말에 봐도 되긴 하지만 주말에도 종종 회사에 불려나가기 때문에 불안해서 영화를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주말에는 모자란 잠을 연속해서 자기에도 많이 부족하다. 누적된 피로가 풀리는 날이라 그런 듯 하다. 그 덕에 평일은 습관처럼 밤 늦게까지 깨어 있다. 자연스레 주중 저녁에 영화를 보는 것이 주말보다 더 편하게 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영화를 혼자 보러 가면 뭐가 좋으냐고. 게다가 돈이 한 푼 이라도 아쉽다면서 어떻게 영화 볼 돈은 있냐고 말이다. 내가 술자리를 피하는 핑계로 자주 대는 것이 돈인 탓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인터넷에서 다운 받고 집에서 편히 보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이야기 한다.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술 자리를 같이해 사람들이랑 어울리라고 조언을 한다. 그것이 사회생활 이라면서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할 만하기도 한데, 난 왜 이렇게 고집스럽고 미련한지 모르겠다. 뭔가 거창한 뜻이 있어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아니다. 그냥 내 삶에 나름의 사치를 영화로 정했을 뿐이다. 딱히 영화계를 생각해서라든지 혹은 영화광이라 그러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많이 보지만 영화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다. 그냥 재미가 있으면 재미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없다. 이 정도만 이야기 할 뿐이다. 영화에 대한 이런 저런 이유는 대지 않는다.

 

영화 잡지도 읽지 않고, 인터넷의 흔한 영화 게시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감독의 숨겨진 의도나 해석은 그냥 나를 더 머리 아프게 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이다.

 

인맥이 좋으면 나중에 직장을 옮길 때나 성공하는데 도움이 되니 술자리를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억지로 술자리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야기에 나는 반대 한다. 왜냐면, 나 같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쌓는 인맥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고, 그렇게 얻는 일자리라고 해봐야 그 또한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돈 더 벌도록 승진을 한다 해도 거기서 거기고, 그거 조금 더 잘 보인다고 내 월급이 엄청나게 상승하거나 내 일이 엄청나게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술자리 열심히 나가도 싸울 사람들은 싸우고, 화낼 사람들은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내 시간은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번엔 쓸데 없는 신세 한탄을 해버렸다.

 

 

영화 상영관에 들어왔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처음 영화관에 혼자 올 때 자잘한 걱정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남자 혼자서 영화관에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부터 시작해 괜히 영화 보는 커플들이 날 보면서 비웃지는 않을까하는 상상까지. 영화를 혼자 보기 전에는 정말 괜한 걱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 영화관에 혼자 들어와서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날 투명인간 취급한다. 관심도 없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커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기에 바쁘고, 이런 저런 무리들도 그들만의 대화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들 모두 혼자 영화 보러 온 남자에게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다. 그리고 요즘은 영화를 혼자 보러 오는 남자들도 꽤 많아졌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혼자 영화 보러 오는 남자들이 나를 보고 괜한 동질감에 속으로 반가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가끔 그들을 보면 이상한 동질감을 느낀다.

 

지루한 광고가 계속 나온다. 나왔던 광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처음 나오는 광고야 그래도 그나마 봐줄 만 하다. 그런데 나 처럼 영화관에 자주 오다 보면 미친 듯이 반복되는 광고를 외울 정도다. 그래서 TV를 보지 않더라도 어떻게 생긴 사람이 잘나가는 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영화관에 뿌려지는 광고엔 가장 많은 인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광고는 왜 이렇게 반복해서 틀어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한편 보면 똑 같은 광고를 3~4번은 보는 것 같다. 실제로 몇 번이나 반복되는지 세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세어볼까? 귀찮다. 그냥 영화 시작할 때까지 트위터에서 유명인들이 떠드는 이야기나 보련다.

 

트위터에서는 매일 사람들이 투닥투닥 거린다. 유명인들끼리 서로 트윗을 주고 받으면서 싸우고, 정치와 관련되어 있다 싶은 사람들끼리 서로 욕에 가까운 글을 날린다. 소통한다 말하면서 여기저기 차단하기 바쁜 사람들과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한다고 욕하기 바쁜 사람들 등등세상의 아비규환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하다. 가만히 트위터를 보고 있으면, 왠지 이 세상이 아니 이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왠지 신기하다.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영화가 시작 되려나 보다. 뒤쪽에 아주머니 한 무리가 상영관이 어두워졌음에도 굴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머니 아들 이야기 이제 다 알겠으니 그만 좀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다. 기분 좋게 보러 와서 괜히 기분 망치고 싶지는 않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나도 그리고 당사자도 기분을 심하게 망치게 되니까. 영화가 시작되었다. 아주머니들 무리는 목소리를 줄여서 떠든다. 진짜. 그냥 무시하기로 한다.

 

 

영화가 끝났다. 초반에 아주머니 무리들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영화가 나름 재미있었는지 금새 괜찮아졌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나는 번잡한 것을 싫어해서 언제나 사람들이 대충 다 나갔다 싶을 때 일어난다.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가고 나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영화관 불이 켜지고 직원이 오락가락 하면서 빨리 나가라고 무언의 재촉을 했지만 괜히 나는 천천히 움직인다. 나만의 여유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탓이다. 밤이 깊었지만 영화관 밖은 아직도 환하고 시끌시끌하다. 원래는 주택가 동네라 조용했었지만 영화관이 동네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이 동네도 꽤 번잡스러워졌다. 영화를 쉽게 보러 오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꽤 편해지긴 했지만, 동네가 번잡스러워진 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저물어 간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푹 잠을 자도 된다. 물론 회사에서 갑작스레 불러서 나갈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최소한 늦잠이라는 것을 잘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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