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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 시즌1 감상 본문
덱스터 시즌 1 에피소드 1
나는 이것을 두 번째 본다.(2014.06.07.기준) 결말도 알고 덱스터의 주변인물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다 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시선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덱스터를 다시 보는 이유는 뒷 이야기를 모르고 볼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두 번 째에는 보일 수 있어서다. 뭐랄까... 감독의 시선에서 보게 된달까? 개인적으로 나는 1~3시즌 까지가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기본 설정은 이렇다. 연쇄살인마가 있다. 영어로는 시리어스 킬러라고 하는데, 이 살인마에게는 원칙이 있다. 경찰이 해결하지 못한 아주 흉악한 놈들만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즌 1의 1편은 이 덱스터의 삶의 방식을 설명한다. 왜 그런 규칙이 세워졌고, 얼마나 잘 지키고 사는지. 더불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덱스터를 바라보는지 등등 말이다.
어떤 이야기든 다 그렇지만 굉장히 흉폭해 보이는 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뭐랄까 덱스터에게 경고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할까?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덱스터도 그의 등장으로 흥분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드라마 안에서 덱스터는 섹스라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살인으로 그 욕구를 대신하는데, 그가 만나는 여자친구에게 성적인 도발을 하게 된다. 그것도 살인현장을 다녀온 후 말이다. 덱스터는 경찰서 내의 과학 수사 담당이다. 여자친구를 만나는 이유가 여자가 섹스라는 것을 병적으로 피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성적인 흥분을 하지 않음을 감추기 위해서 ㅡㅡ;;
끊임없이 자신만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일탈의 기회 혹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의 등장을 발견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감독은 혼자만의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덱스터의 얼굴표정을 잡는다. 그와 대비되도록 일상 속에서 그의 친구들에게 보이는 어색한 웃음도 꽤 열심히 잡아준다. 덱스터의 표정을 유심히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본다.
사람은 누구나 못나든 잘나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원한다. 물론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디 쉽던가? 나만의 모습이 있다면 상대는 상대만의 모습이 있는 법이고 남들이 나를 이해 못하는 만큼 나도 남들을 이해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여하튼 에피소드 1의 한 줄 제목을 만들어 보자면...
< 나를 이해할 것 같은 누군가의 관심 >
관심 받기 싫어하지만 내심 관심을 바라는... 뭐 그런 심리의 이야기랄까? ^^;; 어쩌면 덱스터 전반에 깔려있는 문제기도 하지만 말이다.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2
공포... 두번째 이야기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였다. 덱스터에게 붙잡힌 사람들은 모두 공포를 느낀다.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그런데 그 온순함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고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말을 내 뱉는다. 주인공인 덱스터도 똑같은 공포를 느낄까?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두번째 이야기를 아우르는 메시지는 공포 같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포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덱스터는 공포가 아닌 흥분을 느낀다.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 한다. 마치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긴 어린아이처럼. 감독은 여자친구인 리타의 섹스시도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풀어낸다. 이 이야기를 통해 덱스터는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성적 흥분을 섹스가 아닌 공포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설명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덱스터는 오히려 섹스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한편, 덱스터를 위협하는 아이스크림트럭 킬러에 대한 단서도 조금씩 이야기 된다. 덱스터에게 살인 원칙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면, 아이스크림 트럭 킬러에게는 창녀라는 원칙이 있는 것이다. 덱스터를 노리는 킬러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몸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덱스터의 동생 데브라의 입을 통해서 창녀들이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잠깐 이나마 설명이 된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동안 몸을 파는 여자에 대해 왜 사회는 죄악시 하는가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몸을 파는 여자보다 그 여자들을 사는 남자들 쪽에 나쁜 이유는 더 많을 텐데 말이다. 나름의 이유로 여자의 몸을 사는 남자들도 분명 있긴 하지만... 게다가 소수이긴 하겠지만 정말 그거 아니면 방법이 없겠구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의 인가? 무엇이 옳은 방법인가? 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무조건 덱스터를 응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덱스터는 애정을 줄 수밖에 없는 케릭터가 된다. ㅡㅡ;;
여하튼 에피소드 2의 한 줄 제목을 만들면...
< 공포와 흥분의 모호함 >
글을 쓰고 보니까 드는 생각인데, 덱스터란 케릭터는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무섭다. ㅡㅡ;;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3
떡밥을 왕창 뿌리는 이야기 였던듯... ㅡㅡ; 뒤에 따라올 이야기를 위해서 미리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을 뿌리는 것을 떡밥이라고 표현하는데, 세번째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인듯 싶다. 두 번째 보는 것임에도 조금 놀라웠던 것은 누군가의 살인 사건을 막으려는 덱스터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 아마 이것도 덱스터가 변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였던 듯 싶다.
처음 덱스터를 볼 때도 느꼈던 것인데, 1~2회에서 보였던 피해자들의 공포가 점점 무뎌진다는 것이다. 뭐랄까... 당연히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니까 당연한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번째 부터는 피해자(?)의 얼굴을 많이 안 잡아줘서 그런 것이려나?
그리고 덱스터의 여자친구인 리타가 2회까지는 굉장히 무덤덤한 느낌이었다면, 세번째 이야기부터는 덱스터와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처럼 그려진다.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의 모습이 보여졌다. 나름 덱스터와의 러브라인을 넣느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덕분에 리타가 태풍에 휩쓸려 쓰러진 벼같은 사람의 이미지에서 잠시 사람들에게 밟혔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잡초의 모습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덱스터가 리타에게 끌렸던 이유는 그냥 쓰러진 불쌍한 사람의 이미지 때문이었을 텐데...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에피소드3의 한 줄 제목을 말하자면...
< 뿌려진 떡밥 만큼... >
그나저나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4
이번에는 내 눈에 딱!! 걸렸다. 네번째 이야기에서 하고 싶었던 주요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이번에는 "정"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가면이었다. 사람들은 본래의 자신과 다른 모습의 가면을 가지고 산다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사람다움을 사람의 정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강력계(?) 반장인 라구에타의 행동으로 많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욕구만 바라보고 달리는 그녀가 사람의 정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결여된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2014년)의 서울도 사실상 사람다움을 많이 잃어버린 지역이라서 더욱 생각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툼레이더가 한번씩 여기저기서 나올 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미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여파를 끼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물론 덱스터는 툼레이더를 잘 모르는 듯이 그려지긴 했다. 1998년도 쯤 게임이 발표될 때도 그랬고, 게임쇼 행사로 툼 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포트를 닮은 사람을 투표해서 뽑힌 신인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할 때도 그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씩 활용 될때 보면 시대의 획을 쫙~ 그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으로 치면 서태지가 나와서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가 10대 중심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요즘 10대는 서태지를 모를 수도 있으니... 누구와 비교를 해야 하나? 췟!! 나도 늙었나보다. ㅡㅡ;;;
아 생각났다. 10대 맞춤 설명으로 하면 엑소의 전후로 나누면 괜찮을까? 개인적으로 엑소가 어느 정도로 대중문화에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만.
이번 에피소드4의 한 줄 제목을 말해보자면...
< 사람의 정이란 무엇인가 >
이쯤 되겠다. 다음 내용은 내일(2014.06.08)해야겠다. 이제 게임 좀 하러 가야지...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5
보통의 삶... 덱스터는 보통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보통과는 거리가 먼 욕구 때문에 보통과는 멀어졌다. 그런데 보통의 삶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언제나 의문이 든다. 무엇이 보통의 삶인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나면,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고. 그들이 보는 보통의 삶은 무엇이기에 그렇게 보통의 삶을 외치는 것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삶은 아마도 자신의 눈에 비친 타인의 삶일 것이다. 자신이 걷지 않은 누군가의 삶.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안정되어 보이는 삶. 나는 내 친구들이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꿈은 아니지만 돈을 잘 벌 수 있다기에 선택한 길. 일은 재미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남들이 우대해주는 직장. 내가 하고 싶은 것 보다 일단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삶. 나를 보는 친구들은 내가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지 모르겠다. 돈은 잘 못벌지만 꿈을 쫒아가고 있다며 허세떠는 허풍쟁이의 삶. 어디가나 허풍쟁이들은 차고 넘치니까 말이다.
덱스터는 보통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 처럼 연기한다. 그건 덱스터 만의 삶이었을까? 덱스터는 살인자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기괴한 자신을 숨기고 보통의 사람처럼 꾸미는 그들을 보며 즐거워 한다.
항상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하는 말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당신이 보통의 사람이다. 당신의 즐거운 모습과 행복해 하는 표정이 부러울만큼 보통의 삶이다. 내가 남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보듯 말이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외친다. "나는 기이한 삶을 살고 있다." ㅡㅡ;;;
이번 에피소드5의 한 줄 제목을 달면...
< 덱스터도 어쩌면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아참!! 자동차 트렁크 속의 눈을 기억하자. ^^;;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6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떠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혹은 언제나 그럴 것이라 믿었던 생활이 무너졌을 때는 어떨까? 덱스터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감정이 없던 덱스터가 자신의 삶 앞에서 무너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징조는 1회부터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명확하게 무너진 덱스터를 보여줬다.
나는 말버릇처럼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슴 속 한 편에서는 누군가 내 옆에서 영원히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욕심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은 변하고 삶도 변하고 행동도 변한다.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와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된다. 변화에 몸을 맡길 수도 있고, 변화를 거부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옳은 것은 없다. 그 행동이 자신을 망가뜨릴지 위대하게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미래가 아닐까? 나는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변화에 맞서는 사람인가?
이번 에피소드6의 한 줄 제목은...
< 변화와 두려움 >
점점 글이 짧아진다. 벌써 귀찮아진 것인가? ㅡㅡ;;;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7
한 번 봤던 것이라 그런 것인가 글로 더 쓸 것이 뭐가 있나 싶다. 아마 귀찮아진듯 하다. 연속으로 보면서 뭔가 끊임없이 끄적거려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든, 소설을 보든, 드라마를 보든 간에 나는 항상 하나로 아우르는 단어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욕심이랄까?
덱스터의 여자친구 리타와 그녀의 아이들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건 그만큼 덱스터에게 리타와 아이들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리타를 전 남편에게 보내주려는 덱스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언제나 그랬듯 무신경하게 말이다. 무기력증에 휩싸여있던 리타를 덱스터는 본의 아니게 당당하고 용감해지게 만들었다. 애초에 무기력한 리타에게 덱스터가 원했던 것은 그냥 덱스터를 겉보기에 좋아 보이도록 만드는 마네킹이었다. 특별한 것을 해줄 필요가 없는 상대였으니까. 처음 등장할 때는 이상하게 생기고 나이든 금발여자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7회쯤 와서는 엄청 이쁘진 않은데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의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다. 일부러 분장할 때 주름을 덜 넣은거려나?
이번 에피소드7의 한 줄 제목은
< 거침없는 리타의 변신 >
뭐 이정도. 결론은 리타가 이뻐보였음. 분장 탓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때, 멋져지고 이뻐지는 것 같다. ^^;;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8
인정하다. 내 안의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다른 것이 타인이 보기에 보기 좋지 못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덱스터의 이번 이야기는 그런 다른 것을 인정하는 이야기였다.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덱스터는 섹스에 흥미를 못느꼈다. 여덟번째 이야기에서 덱스터가 섹스에 흥미를 못느끼는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나도 인정하기 힘든 남들과 다른 나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었다. 그 덕에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았던 것이기도 했다.
섹스란 행위는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것을 상대방에게 모두 노출 시키는 의미가 있다. 단순히 옷을 벗기 때문이 아니라 옷을 벗는 다는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공개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원나잇을 즐긴다던지... 쉽게 불륜에 빠진다던지 등등 말이다.
덱스터는 많은 사람처럼 섹스란 행위가 자신의 다름을 상대에게 모두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덱스터에겐 좀 더 심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서 덱스터는 같이 밤을 보낸 리타에게 자신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리타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전 남편에 의해서 가해진 폭력과 이어진 섹스는 그녀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마음을 터놓는 행위로 상징되던 섹스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다. 덱스터가 그런 리타에게 무력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덱스터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섹스를 두려워 하던 리타가 덱스터를 향해 섹스를 자꾸 요구하게 된 것은 그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건 그만큼 덱스터를 믿고 있다는 뜻이니까.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섹스는 그냥 행위일 뿐 진짜 의미가 거기에 다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처음에 말한대로 섹스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육체적인 쾌락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그렇다면 몸을 파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는 손님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그래서 오래 전에 떠돌던 이야기 중엔 몸을 파는 사람은 섹스가 아니라 키스 행위로써 마음을 열었다는 신호로 쓴다고 했다.
형식은 그저 형식일 뿐이다. 형식에 얽메여 고민하기 보다 그 속의 의미를 좀 더 새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번 에피소드8의 한 줄 제목은
<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때 >
요 정도로... 이번 이야기는 너무 거침 없었나?? 섹스란 단어에 흥분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지 않기 바란다.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단 이야기니까. 설사 당신이 5~60살이 넘었다고 해도 말이다.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9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한다. 특히 그 사실이 내 핏줄과 연관된 것이라면 더욱 더. 뭐 한국에서는 핏줄과 관계되어 있는 몰랐던 사실이 드라마가 방영 될 때마다 나오는 것이라 그리 신기하지 않긴 하지만...
이번에 주제는 숨겨진 사실인 것 같다. 시즌 중반 부터 시작된 아이스크림트럭 킬러와 덱스터 사이의 놀이(?)는 어느새 덱스터 친부모 찾기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위해 사실을 감춘다. 그것이 꼭 좋은 결과를 낳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그나마 좋은 결과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독서토론 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사실을 알려야 옳은지 아닌지를 가지고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었다. 각자 선택에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사실이 당사자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된다면, 감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었다.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진실과 사실을 많이 혼용해서 쓰는 것 같다. 나는 사실이란 사진을 찍듯 일어난 사건의 그대로를 뜻하고 진실은 사건을 일으킨 혹은 사건의 당사자들의 의견과 생각 의도 등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고 알고 있다. 진실에 쓰이는 한자인 참 진짜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굳이 사실과 진실을 구분지어 단어를 만들어 놓았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필요하니까. 국어사전이나 이것 저것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 글은 한국어 강의 포스팅이 아니니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한다. 아마 나중에 이 포스팅을 보충하면서 다시 정리 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9회쯤 오면 아이스크림트럭 킬러의 범인은 밝혀진 상태다. 문제는 그가 왜 덱스터와 놀이(?)를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인데, 그건 시즌1의 마지막 회인 12회 쯤 풀릴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두 번째 보는 것이라 결말을 알고 있다. ㅡㅡ;; 물론 오랜만에 다시 보는 것이라 많이 까먹기는 했지만...
이번 에피소드9의 한 줄 제목은
< 사실을 넘어 진실로 달려가는 덱스터 >
이렇게 하려고 한다. ^^;; 그러고 보니 이제 시즌1이 3회 남았다. 어휴 길다 길어... 앞으로 한 시즌 24회짜리 미드 리뷰도 할 수 있으려나?? ㅡㅡ;;;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10
그동안 뿌려두었던 떡밥(이야기의 복선)을 회수하고 시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핵심 줄기인 아이스크림트럭 킬러에 관한 이야기와 동시에 곁가지로 있던 각종 이야기들이 각 이야기의 중심 주제와 같이 묶여 풀렸었다. 10회는 그 중 리타의 골치거리였던 전 남편 문제가 해결된다. 오래 전 기억에 리타의 전 남편 이야기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었는데, 다시 보고 나니 그럴만 했다. 길게 끌어온 이야기 치고는 좀 허무한 편이었다. ㅡㅡ;;
대부분의 미드들이 그렇듯 덱스터도 11회와 12회에서 중심 줄기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갈 것이다. 이제 남은 의문은 두가지다. 아기 덱스터는 왜 항상 붉은 피가 흥건한 공간에 있었는가? 그리고 아이스크림트럭 킬러는 왜 덱스터를 노리는 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결말을 안다. ^^;;
다시 보면서 느낀 건데, 이 드라마는 등장 인물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잡는 화면이 꽤 많은 편인 것 같다. 유난히 덱스터의 표정에 집중해서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궁금점. 아이스크림트럭 킬러가 피해자들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칠 할때 다른 색으로 칠한 것이지? 이건 처음 볼 때도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색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촌스럽러운 색으로 느껴진다. 아!! 그리고 아이스크림트럭 킬러가 여자들 특히 몸을 파는 여자들에게 집착했던 이유도 까먹었다. 아니면 설명이 안 되었었나? 일단 1시즌을 다 보고 나서 해답을 얻으면 적어 놓겠다.
이번 에피소드10의 한 줄 제목은
< 덱스터의 충격 >
이정도로 요약하련다. 그러고 보니 처음 설정된 케릭터에 비해 덱스터가 엄청나게 인간적으로 변했다.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11
아이스크림트럭 킬러가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희생자는 주인공의 말을 안 듣는다. 하지만 11번째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덱스터가 확신이 서지 않아 확실하게 전하지 않은 탓도 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눈에 띄는 이야기는 뭐라해도 리타와 전 남편 이야기 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전 남편의 좋은 모습만 남기려했던 리타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점. 덱스터가 아버지로 부터 숨겨진 자신의 과거를 알아가게 되는 모습 때문에 이렇게 설정했을 것이다. 뭐 언제나 결론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체할 만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 강하다.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에피소드11의 한 줄 제목은
< 나 여기있다! 덱스터! >
그런데 에피소드12에선 시즌 1의 전체 감상을 적어야 하겠지?? ^^;;; 아님 그냥 12에 대한 이야기만 적어야 하나?
덱스터 시즌1 에피소드12
시즌1의 완결편이다. 사실상 시즌1의 이야기를 아우를 것 같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단어는 이해였던 것 같다. 덱스터가 특이한 만큼 덱스터는 그 특이한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랬다. 그런데 그건 덱스터만의 고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게 되는 고민이다. 그 사람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니까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관심 받고 싶은 욕구로 이어진다. 청소년기에 종종 나타나는 기괴함을 일컫는 중2병은 이런 욕구가 강해져나 나오는 것이다.
덱스터를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인물로 친형을 내세웠다.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친형. 그리고 핏줄이기 때문에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과연 그는 덱스터를 진정으로 이해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덱스터가 가지고 있는 어둠에 대한 이해일 뿐이라고 본다. 그것을 핏줄이기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덱스터의 친형은 강조한다. 내 생각에 만약 덱스터를 완전히 이해했다면, 덱스터가 왜 양아버지의 규칙속에서 살아가는지도 용납해야 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덱스터의 형은 그저 자신의 세계에 동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즌2의 이야기를 위해서 리타가 덱스터의 정체에 접근해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리타는 덱스터의 어둠을 이해 할 수 있을까? 그건 시즌2를 보면 알겠지... ^^;; 그나저나 손톱의 색은 설명이 되었는데, 왜 피해 대상들이 몸파는 여성들이었던 것이지? 흠...
에피소드12와 시즌1 전체를 아우르는 한 줄 제목을 만들자면...
< 누가 날 이해해 줄 수 있으리오 >
이 정도 쯤? ^^;; 개인적으로 연인과 이해란 주제로 글을 더 끄적거리고 싶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했다. 뭐 시즌2를 보면서 할 수 있기도 하기에 다음 기회로 패스~ 그나저나 드디어 이틀 동안의 작업(?)이 끝났다. ㅜㅜ 나중에 이상한 문장이나 생각의 변화가 생기면 수정을 하겠지만 일단은 여기서 완료다!
시즌1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의 간략한 프로필 좀 정리해야겠다. 나름 1차 완료(201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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