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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다.

서울을 거닐다 - 두번째 이야기

무량수won 2011. 2. 20. 17:44


학교를 다니던 시절. 유명한 시를 "배워야" 했었다.

시를 음미한다기보다 시를 배워야만 하는 시간이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시는 그냥 배우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덕분에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유명한 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 두개씩은 머리속에 남게 된다. 배워야한다는 강압 속에서도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가 하나 두개 쯤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활동하는 까페에다가 비둘기 사진을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가 생각나서 사진 밑에 "문득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가 떠올랐다"고 써놓았다.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뭐라고 할까? 이 시의 마지막에서 말하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이부분이 자꾸만 가슴을 툭툭 건드렸었다.

아마 작가가 시를 쓰던 당시에는 비둘기가 지금과 같은 지저분한 새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어떤 의미를 담아 썼던 표현이 현실이 되어버린 2011년의 시간에서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을 잃어가고 골칫덩이가 되어갔듯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의미들이 사라져만 간 것 같아서.




그래서 두번째 목적지를 성북동으로 정했다.




그래놓고.. 석계역에서 내려주는 쎈쓰!!!

처음 서울을 돌아다니다를 쓸때도 그랬지만 잘 안갈 것만 같은 곳을 걸어 다니는 것이 목표였기에 성북역이 아니라 석계역에서 내려서 성북역까지 걸어서 갔다.

나름 석계역 쪽은 번화한 곳이었는데, 일부러 이렇게 후미진 곳으로 걸어 들어왔다.

목표는 성북역!!





석계역에서 성북역은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성북역은 성북동이 아니다. 그냥 성북구에 있는 역일 뿐이다.

결국 나는 성북동이 생각나서 성북동으로 향했지만 성북동이 아닌 그냥 성북역으로 갔을 뿐이다. 근처의 다른 동네로.





꼭 그 곳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짜피 성북동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향한 걸음은 아니었으니까.

석계역에서 성북역으로 걸어가며 보이던 풍경은 후미진 도로의 느낌이었다. 서울의 그 높은 건물들이 보이지 않고 낮은 건물들과 낡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내가 일부러 이런 쪽을 찾아서 들어온 것이긴 하지만.

뭐랄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왠지 이런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도 크고 작은 교회들이 이 주변에 참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북역은 낡은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다. 그중에서 낡은 건물을 찍은 것이다.




여기저기 거미줄 처럼 뻗어있는 전깃줄 사이 사이에 건물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듯 낡은 건물부터 그저 그렇게 그 시절에 지었던 집들처럼 마구잡이로 올라간 건물등이 놓여 있었다. 좁은 찾길에서도 쉴새없이 버스가 다니고 있었고 사람들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도로가 좁으면 인도도 좁아진다.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인도.

그나마 이 정도의 안전장치도 없고 인도라는 표시도 없는 찻길이 내가 지나온 길이었다. 이제는 이런 골목 같은 찾길은 서울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듯 하다.

차를 타고 다니면 내 갈길이 바빠서 쉽게 바라보지도, 쉽게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런 곳은 걸어다녀야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 역 주변이기에 간긴히 볼수 있는 높은 송전탑.

이 송전탑이 위험해 보여지만 이런 송전탑이 없다면 사람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을 쉽게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집과 전봇대와 송전 탑은 떼어 놓고 볼수도 없고, 생각 할 수도 없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봇대.

그리고 삶의 터전.

서울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전봇대에 얽혀있는 여러가닥의 선처럼 많은 사람들과 얽혀가면서....





눈이 내린 후.

도로 주변은 쌓여있던 눈이 녹으면서 이런 장면을 연출한다.




중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중의 하나.

이곳도 역시 공사 중이었다. 무엇을 공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을 견디고 있는 식물.

겨울이 주는 차가움은 여름에 있을 화려함을 위해서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리라.

사람에게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있듯이.




찜질방들에 밀려서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목욕탕의 모습.

문득 "억수탕"이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이런 굴뚝이 있는 목욕탕의 모습을 이제는 쉽게 발견 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를 헤메이다가 눈길을 끄는 골목이 있어서 들어갔다.

유독 가운데에 있는 낡고 오래된 독서실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발견.

한때는 대중들의 스포츠였던 바둑과 당구.

지금은 피시방에 밀려 대중과는 멀어진 놀이(?)가 한 건물에서 공존하고 있다.




단독 주택들과 아파트.

누군가는 독특한 집을 짓기도 하고, 누군가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곳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어두워지는 골목.

누군가의 휴식처들이 모여있는 곳.




누군가에게는 그 골목이 이런 오르막길이 될 수 있다.




한국판 브레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이라는 장동건과 고소영 주연의 영화 연풍연가의 포스터.

누군가의 집을 오랜 시간 장식했었을 이 포스터는 이제 길거리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참 신기한 것이 이런 방치되는 것들이 모이는 것도 전봇대 주변이라는 점.


유럽을 배경으로 한듯한 액자의 그림을 버린 사람은 유럽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일까?






서울에서는 주차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8~90년대 부터 자동차의 보급이 많아지면서, 서울에서는 차를 주차시킬 공간이 매우 부족해졌다. 지금은 그런 불편에서 조금 해소가 된듯 싶지만 주차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편.

비좁은 골목에 자동차를 세워 놓아야 하는 그들.

사람 많큼이나 많은 자동차들의 세상.

서울사는 이들에게 차란 무엇일까?




그래서 서울 곳곳엔 이런 감시 카메라가 설치 되어있다.

편하자고 타고 다니는 차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와 투쟁이 있어야 한다.


좁다란 골목까지 버스가 다니는 서울.

그토로 많은 택시들이 돌아다니는 서울.

주차시킬 공간이 부족해서 아우성을 지르는 서울.




서울의 해는 보통 이렇게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다.

그 비좁은 서울이란 공간에서 골프 연습장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다.

이제 골프는 대중 스포츠인 것일까?




집으로 가기 위해서 찾은 청량리 역에서도 건물들 사이로 지는 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서울의 건물은 이 사진 정면에 보이는 저런 건물들이 늘어선 곳일 테지.




그렇지만 그들의 눈에 이렇게 뿌옇게 처리된 것 처럼 보이는 저 낮은 건물들도 서울에 존재 한다.

그속에 당신도 있고 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미래도 있다.




서울의 많은 곳이 이런 아파트 단지들로 변해 간다.

편해지고 좀 더 모여살게 된다.

하지만 좀 더 삭막해 지는 것은 왜 일까?

예술 작품 처럼 멋진 불빛이 들어오면 멋지기는 하지만 차가운 금속인 것은 어쩔수 없는 것 처럼.

서울의 많은 곳은 멋진 모습을 가진 차가운 금속이 되어 가는 듯하다.




그리고 언젠가.

저런 건물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아파트와 새로운 높은 건물들이 그 자리를 꿰어차고 있을 테지.





외로운 섬 같은 이런 건물들은 언제까지 남아 있을수 있을까?



그렇게 두번째 서울에서의 발걸음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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