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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및 답변

카이스트에서의 자살, 그리고 사회

무량수won 2011. 4. 14. 16:50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의 연이은 자살보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누군가 죽어야만 바뀌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비슷한 예로 군대를 이야기 해보자. 군대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곳이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 장병의 건강을 위해서 일과 시간이 끝나고 달리기를 하도록 했다. 격오지라 불리는 곳에 있어서 변변한 연병장이 없었던 터라 근처 잘 닦인 도로로 나가서 달리기를 했다. 더군다나 공사 중이었기에 차도가 모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반 정도만 공사차량이 간간히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달리기 금지 명령이 내려왔다. 상급 부대에서 달리기를 하던 중 병사 하나가 죽었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학교는 밖에서 조회를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항상 운동장 조회를 했었다. 교장 선생님의 끝나지 않는 연설. 뜨거운 아침 햇살에 학생들은 지루해 하지만 앞에 서있는 무서운 담임 선생님의 눈을 보고나면 몸은 다시 경직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런 지겨운 연설이 오랜 시간 벌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누군가 햇볕에 쓰러지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조회를 하러 나갈때면, 우스겟 소리로 오늘은 니가 한번 쓰러져보라고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었다.



이 모든 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예시의 경우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뭔가 이상이 발생한 후에야 조치를 취한 다는 것이다. 누군가 죽어나가거나 누군가가 쓰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누군가 쓰러지거나 죽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였고, 지금도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있다. 물론 군대 이야기는 달리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ㅡㅡ;;

특히 오래된 조직일수록 그 변화에는 이런 극단적인 죽음이 따라야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일이 잦다. 본의(本意) 아니게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되는 사람이 나와야 변화하거나 혹은 생각이란 것을 해준다. 요즘은 한 명이 죽는 것 가지고는 큰 이야기가 되지도 않는다. 2~3명은 죽어줘야 그제서야 사람들이 조명을 하나씩 비춰주기 시작한다.

카이스트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처음 학생이 죽었을 땐 다들 그런가보다 했는데, 두명 세명이 죽어나가니 점점 이들에 대해 사람들이조명을 비춰주기 시작해서 지금은 총장을 바꾸네 마네하는 상황까지 왔다.



희생....

그들은 뜻하지 않게 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이 되었다. 그들이 희생이 되기 전에, 그렇게 문제가 커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또는 수면위에 올라서 논의라도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요즘 나는 EBS에서 방영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의 영향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읽고 있다. 공리주의에서 희생은 그 목적까지도 남들을 위한 것이어야 제대로 된 희생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을 온전히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대단히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 ...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美德)이다.

-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책 세상.
-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어찌되었든 희생이라는 것이 자꾸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뜻이고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공리주의의 모든 것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 부분만큼은 적극 찬성한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완전할 수는 없다. 인간 자체가 완전 하지 못한 생명체인데 그 완전하지 못한 생명체들이 모인 사회라는 곳이 완전하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바라보고 있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고, 바라봐서는 안되는 방향이라는 것이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사람이 칭송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게 희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사회는 결코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본다. 특히 이런 희생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면, 분명 이 사회는 굉장히 잘못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의 자살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칭송받을 만한 희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의해서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으니 그들의 죽음이 헛되다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결정까지 하지 않도록 사회가 미리 막고 변화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항상 이런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제는 제발 그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이 바뀌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누군가 희생되기 전에 좀 더 바른 길로 가야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만 잘살면 되'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고 '저 사람도 같이 가야할 사람이니 손을 내밀자'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야만 할 것이다.

우선 젊은 세대 그리고 성장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팽배해진 '나만 잘살면되고 니들이 못사는 이유는 니들이 못나서다라'는 식의 인식이 사라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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