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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토론 모임

인더풀 - 오쿠다 히데오

무량수won 2013. 3. 15. 10:44





살인!! 게임에 중독된 것이 원인!! 집에서 게임 많이해...

성폭행!! 포르노 많이 본 것이 원인!! 집에 포르노가 있어...


요즘 기사로 자주 뜨는 단어와 그에 대한 설명들이다. 당신은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게임은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만드니까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포르노는 성폭행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에 모두 사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좀 더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게임과 포르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과연 살인이 일어나지 않고, 성폭행이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비율이야기를 하고 기사화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상 그 누구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우선 사건의 발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어떠한 기사도 통계적으로 게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혹은 포르노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크게 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만약 게임과 포르노에 있는 어떤 성향. 다시 말해 게임의 폭력적인 면과 포르노의 선정적인 면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게임이 유행하지 않던 시기에 하던 아이들의 총싸움 놀이와 포르노가 유통되기 전에 대중들 사이에서 떠돌던 춘화라는 그림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앞서 말한 식으로 세상의 문제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냥 내가 말했으니 믿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혹여 실험이란 것을 하면서 신뢰도를 높인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실험이란 게임 하는 아이들이 있는 게임방에서 전원을 내려 아이들을 화나게 만들고 그런 아이들의 욕설을 듣는 정도의 수준의 실험을 하는 수준이다. 굉장히 악의적이고 엉터리 같은 실험으로 사람들을 호도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먼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것이다. 그건 <인더풀>이란 소설책 안의 <이러지도 저러지도>라는 편에 등장하는 인물과 앞선 이야기로 사람들을 호도시키며 잘났다고 자부하는 어른들과 많은 상관관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강박관념이 강해져 매우 불안한 생활을 한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운뒤 분명 담배불을 껐음에도 혹시 집에 불을 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어 밖에나가서도 꺼놓은 담배가 집을 태울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고생하게 된다. 결국 이라부의 신경정신과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라부는 그의 걱정의 범위를 넓혀버리고 만다. 담배로 시작된 강박관념은 가스 밸브로 옮겨가고, 전기 누전에 대한 걱정에 이르더니, 자신이 조금이나마 관여된 일 모두를 걱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그 모든 것이 정말 쓸데없는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벌어지지도 않을 작은 일을 너무 크게 확대 해석한 반면, 요즘 기사를 쓴다는 기자들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 하지도 않는 것을 마치 사건 원인의 전부인냥 떠벌리며 기사를 쓴다는 점에서 꽤 닮은 구석을 발견 할 수 있다. 문제는 매사에 기자들이 같은 논리로 접근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라는 점이다. 그 논리의 일관성이라도 보이면 이런 무리들은 원래 이렇구나 할 테지만 그저 그들의 입맛에 맞춰 사람들을 호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그 기자들은 정신병보다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위해서 여론을 조작하는 조작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벌써 몇년 된 사건이 되었지만, 어머니를 살해한 10대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평소 부모 살해에 관련된 사건은 게임탓으로 몰고갔었다. 아이는 공부를 못하고 게임만 했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 아이는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로 들어났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경찰 조사결과 아이는 평소 어머니에게 공부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음이 나타났다. 그 결과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찍한 결과까지 나타난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어떤 기자도 공부가 살인의 원인으로 꼽지 않았다. 공부가 사회 악임을 손 꼽는 사람은 없었다.


게임을 많이해서 부모를 죽인 아이의 원인이 게임인 것처럼 공부를 만이해서 부모를 죽인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실상 각각의 아이들이 게임에 보낸 시간과 공부에 보낸 시간이 비슷할 텐데도 게임은 사회의 악이 되어갔지만, 공부는 사회의 악이라는 모습을 띄지 않는다.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에 나오는 주인공과는 다른 정신적인 병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개인에게 주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혼자만 이상한 꼴이 되지만, 내가 앞서 말한 사건들을 대하는 태도와 쏟아지는 기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대중적인 집단 히스테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에서 그 환자는 완치(?)되지는 못한다. 다만 주인공은 해결 방법으로 그가 걱정하는 바의 원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하숙을 택하게 될 뿐이다. 하숙은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그가 남겨놓은 자취(?)가 만들 불상사를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독립된 생활에서 나타났던 세상과 단절된 듯한 삶을 하숙이라는 생활 형태로 사람들과의 도움 혹은 소통을 시도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걱정을 나누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마찬가지로 앞서 이야기한 사회 문제에 대한 문제는  대한 기자들의 접근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취재라는 행위를 상대에 대한 이해보다는 상대에 대한 표면적인 모습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원래 취재란 사건의 당사자와 세상 사이의 소통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과 단절되어 겉만 보여주는 단절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이 위에서 말한 대로 말도 안되는 논리로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닐까? 때문에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며 이야기할 줄 아는 기자와 그런 기자들을 만들어내는 언론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마치 주인공이 하숙집에서 대안을 찾은 것 처럼 말이다.



<인더풀>은 오쿠다 히데오의 전작 <공중그네>와 비슷한 형식의 소설이다. 모두 단편 형식이지만 신경과 의사 이라부가 등장하고, 각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이라부의 신경과에 방문해 자신들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라부는 신경과 의사라는 권위와 진지함을 내세우기 보다.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그들의 고충에 격이 없이 다가선다. 그런 이라부의 행동에 환자들은 당황하고 놀라지만 결국 이라부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 <공중그네>와 <인더풀>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방식이다.


이라부의 존재는 각박하고 너무나 딱딱한 이 사회에에 정작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진심 어린 동감, 그리고 다소 엉뚱해 보일지도 모르는 웃음과 과감함이 꼬이고 꼬인 세상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고 실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조장되는 이 사회에 필요한 처방제는 이라부 같은 행동 혹은 그런 어린애 같은 마음이 아닐까?


다소 엉뚱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결코 그렇게만 바라볼 수 없는 소설. 그렇지만 너무 무겁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니 그냥 가볍게 읽고 넘겨도 나쁘지 않을 소설이 <인더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중그네>도 포함해서... 생각해보니 <인더풀>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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