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캐리 - 스티븐 킹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캐리 - 스티븐 킹

무량수won 2013. 8. 5. 09:32




그러고보니까 요즘 소설속에 나타나는 인물들과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일에 거리를 두고 있었던 듯 싶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나는 그런 나만의 해석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굉장히 무뎌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잊고 있었던 나만의 해석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 바라보면 캐리란 소설은 나름 많은 문제가 녹아들어있는 소설이다. 특히나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사람을 따돌리는 문제라던지, 종교에 맹신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 선의의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을 때의 문제, 빌리라는 케릭터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행동 문제, 성에 대한 관념 등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소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이야기는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캐리가 참 불쌍하다. 빌리와 크리스는 매우 나쁘다. 수지의 노력은 안타깝게 되었다.' 정도만 생각이 날 뿐이다. 나도 소설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그 뿐이었으니까. 뭐...


나는 한동안 모든 책에 대해서 이런 나름의 해석을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듯 싶다. 최근 몇달 동안 독서토론에 나가서 집을 잃어버린 새처럼 말과 생각이 낯선 곳에서 빙빙 돌았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보고있다. 물론 주변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지 모르지만. ^^;;;



일단 캐리의 줄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왕따를 당하던 여자 아이 캐리가 그 분노를 초능력을 통해 표출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염력이라고 하는데, 꼭 능력을 하나로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그 초능력이 표출되면서 온 마을이 피바람이 부는 이야기다. 꽤 단순한 이야기인데, 소설은 이 피바람 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캐리가 어떤 삶을 살았고, 주변 사람들은 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절반 정도 이야기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건의 소개 부분(앞의 절반)에서 꽤 지루해 질 수 있다. 내가 사건에 대한 설명 혹은 소개부분에서 지루해진 대표적인 사람이다. 사실상 이 소설의 핵심 이야기가 처음부터 공개되는 것이라 김이 샜었다. 이야기에 재미를 붙여주는 대표적인 방법이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이미 핵심적인 이야기를 먼저 전달해놓다 보니 좀 처럼 흥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뒤에 강력한 캐리의 복수와 분노의 마을 파괴가 이어지긴 하지만 앞선 이야기를 보다가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저 멀리 던져놓았다.


그렇게 떠나갔던 핵심적인 이야기는 소설의 절반이 지난 후에 돌아온다. '아! 맞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있던 이유는 이 장면 때문이었지!'라는 결론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마을이 부서진 이야기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사춘기의 아이들과 왕따에 대한 문제, 마지막으로 캐리의 엄마가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던 종교적인 문제다.


소설의 처음 장면은 캐리가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캐리를 싫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도 되뇌어 볼 필요도 있다. 캐리는 그런 왕따를 당하던 아이였다. 이 아이가 초능력으로 마을을 초토화 시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반항과 연결시켜보았다. 굳이 청소년기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혹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들의 분노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캐리가 표출하는 초능력이 그에 대한 상징이다. 초능력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그런 것인지 알아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나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힘이다 정도다. 소설에서도 캐리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그 힘의 근원을 알면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그것이 유전되는 힘이라는 것 외에 소설에서는 힘의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현실에서도 원인을 알면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밝혀내는 원인은 그리썩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소설과 다르게 초능력을 쓰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초능력 대신 다른 것으로 표현을 한다. 보통 사람들이 일탈이라 일컫는 일들이 그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분노로 인한 행동을 하게 되면,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 일단 내가 편해야 하고 내가 안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인해서 안정이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 행동으로 누가 피해보는 지는 내 눈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폭주족들에 대한 것이든지, 마약대신 복용했던 본드라던지, 최근 종종 뉴스에 나오는 도심에서의 칼부림 등이 적절한 예다.


이런 분노의 표출이 보통은 사춘기 시절에 많이 이뤄진다. 부모님에 대한 실망, 어른들에 대한 실망,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들 등등 어린시절에는 몰랐던 사실을 청소년 시기라는 나이가 되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에 대한 반항을 하게 되고 어른들은 그 행동의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 아이들의 행동을 '이유없는 반항'이라고 쉽게 이름 붙여버린다.


캐리의 초능력이 바로 그런 분노며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는 혹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캐리를 이해하려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캐리가 어떤 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학교아이들이 그러했다. 그저 자신들이 보이는 대로 보았을 뿐이다. 캐리는 그 능력을 숨겼다. 아니 굳이 말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캐리의 엄마는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매번 부딧치는 어른들 혹은 부모의 모습과 비슷하다. 소설에선 자신의 왜곡된 신앙 때문에 캐리에게 윽박지르고 화를 낸다. 부모들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의 말이기 때문에 우습다며 그저 넘겨 버리기 일쑤다. 그것이 아이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캐리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좀 처럼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무조건 강요를 한다. 왜냐면 그들이 어른이기 때문이다. 캐리의 엄마는 그 이유를 그저 종교에서 찾았을 뿐이다.


또한 캐리의 엄마는 캐리를 죽이려고 한다. 그건 아이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과도 일맥상 통한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단순하게 정말 죽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나오는 분노의 종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저 생각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맞다. 다만 캐리의 엄마는 그것을 행동 했을 뿐이다. 다시말해 어른들이 느끼는 분노의 표출자는 캐리의 엄마라는 이야기다. 캐리가 엄마와 하는 충돌은 정형적인 아이들과 자신들의 부모와의 충돌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캐리는 마을을 부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모든 마을 사람은 이유를 모르지만 모두 그 짓이 캐리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초능력의 일부로 설정이 되었지만, 나는 그것 또한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달라고 외치는 아우성의 종류로 봤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고,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목을 받고 싶어하지만, 청소년기에는 그 욕구가 더욱 더 심하다. 아니 욕구가 심하다기 보다는 그에 대한 절제 그리고 꼭 주목을 받는 것이 좋지 않음을 잘 모르는 것이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 아이들이 하는 각종 기이한 행동은 그런 주목을 위한 행동이다. 누군가 환호를 해주던 혹은 욕을 하던 자신에게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캐리의 능력은 그런 마음과 같다고 본다.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음을 누구나 다 알기를 바랐기에 그 능력으로 모두 알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고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아니 내가 주목하고 연결시키고 싶었던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소설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캐리란 소설이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청소년 문제에 집중 조명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름 해석하는 부분에서 꽤 일치하는 모습도 보였다. 스티븐 킹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그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캐리를 읽을 것이다. 재미없을 수도 있고, 혹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한 것을 동감 할 수 있고 혹은 쉽게 부정하고 반박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봐줬으면 좋겠다. 사춘기 시절에 혹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표출로 생각했으면 한다. 소설을 읽고 혼자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당신은 무언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그 답답함을 풀어내왔는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