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정형화된 서평들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정형화된 서평들

무량수won 2012. 7. 6. 14:38




남들이 했던 말을 또 한다고 해서 뭐라 할 것은 아니다. 이미 알려진 한줄 서평을 그대로 되뇌인다고 자신의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 부치기에는 내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남들이 했던말을 반복하는 서평은 굉장히 싫어한다.

나는 서평이란 즉,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것이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남기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리 전문가가 좋게 평을 하더라도 내가 싫다면 왜 싫은지를 표현하고, 유명한 전문가가 나쁘게 평을 해도 내가 좋다면 왜 좋은지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 좋은 서평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책을 가지고 하는 서평 뿐만아니라 모든 문화에 걸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평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들어서 톨스토이 작품 바보 이반이라는 소설을 읽고 평을 남긴다고 하자. 이미 톨스토이가 크리스트교적인 사상과 그런 절대자에 대한 어떤 느낌을 소설속에서 표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니 이건 톨스토이 뿐만아니라 1900년 전후반에 발표된 러시아 문학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당시의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라는 종파가 따로 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트교 국가였다. 그러다보니 어떤 서평을 보든, 특히 전문가들의 서평일수록 크리스트교와 연결을 시키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책에 대한 평을 늘어 놓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약 10년전 쯤이었을 것이다. 아름아름 사람들을 모아 독서토론을 할 때였다. 당시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을 주제 책으로 선정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읽는 책마다 책 뒤에 붙여진 서평을 그대로 읽어서 말을 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바보 이반이란 책을 읽을 때도 그의 그런 행위가 자주 반복되기에 남들의 생각을 대변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라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도통 바뀔줄 몰랐고 바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삐딱선을 타고 이야기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가 말했던 삐딱선 타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결국 나는 그 친구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생각되어 그만 두게 되었다. 그저 남의 서평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내가 전문가 서평을 읽는 것이 여러가지로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글을 읽다보면, 그냥 누군가의 서평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인상을 주는 평을 만날때가 종종 있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했으니 나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쓰여지는 서평들. 아무리 봐도 그 글에는 글을 읽은 사람의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왜 자신만의 생각을 갖지 못하고 남의 생각을 따르려고만 할까?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이런 행동을 용납하기 힘들지만,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 정규교육에 너무 충실했던 이들의 경우가 그렇다고 본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것이고, 그 절대적인 말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따르면 성적올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반면 나처럼 그런 절대적인 것에 의심을 품고 불만을 품는다면, 학교 성적은 결코 좋을 수가 없다. 덕분에 나는 공대를 다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고등학교시절은 그런 반발심이 최고조에 다달았었다. ㅡㅡ;; 


나만의 서평과 느낌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흔히 사람들은 "니가 무슨 전문가냐?" 라며 전문가가 아니라면 말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공격을 한다. 만약 내가 이야기 하는 것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꼭 필요로 하는 기술적인 이야기라면, 그들의 공격은 타당하다. 하지만 서평이란 느낌을 남기는 것인데 그런 분야에서 까지 이뤄지는 이런 공격는 그리 옳다고 할 수 없다.

비슷한 예로 책을 읽는 모임을 자주 가지다보면, 어떤 틀에 같혀서 다른 생각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지만, 보통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굉장히 신성시 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신간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런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고전 소설의 경우 책 뒤에 붙여진 대학교수들의 평을 그대로 따와서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반면에 주최자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동조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나 조차도 이야기 하면서 모순된 점을 느끼는 상황에서 주최자란 이유로 동조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답답함이다. 그래 그냥 그들의 의견이 전문가의 생각과 같을 수 있다. 그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그들의 누군가 따라잡기 속에 솔직한 생각이 상실되었다 느끼는 것은 나뿐인 것일까? 혹은 나만의 착각일 뿐인 것인가? 그런 사람들과의 잦은 충돌이 내가 누군가의 결론에 무작정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는 성향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한 평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해야하고, 영화에 대한 평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해야하며, 드라마에 대한 평은 전문평론가 혹은 교수들이 해야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에 대한 평을 많이 접한 사람들이 하게 되면, 이런 저런 간접적인 정보와 그 문화의 외적인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문가가 발산하는 지식의 향연은 꽤 유익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도 된다. 다만 문화적인 것을 평하는데 있어서 외적인 요소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 외에도 그 작품 하나에 집중을 해 평가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속된 스리즈물의 경우, 이야기의 전개상 필요한 것이 있기에 전편을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일 작품에서까지 꼭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냥 그것만 바라보고 이야기 하면 안되는 것일까?

결국 전문가들만 이야기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전문가들이 모두 옳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내가 앞서 말한 정형화된 서평들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문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꼭 전문가처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느낌이 꼭 전문가들의 느낌과 같아야 할 법도 그럴 이유도 없다. 전문가들 처럼 이런 저런 다른 작품들을 연관시켜서 알고 있는 것이 당신보다 많다며 자랑하고 싶은데 따로 본것도 생각도 없어서 앵무새처럼 따라한다면 뭐 어쩔수는 없겠지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