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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영웅 - 미하일 레르몬토프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우리 시대의 영웅 - 미하일 레르몬토프

무량수won 2012. 10. 6. 02:02

시대가 바라는 영웅은 무엇인가?


아니 그냥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웅은 어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내가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영웅에 심취해 있어서 혹은 무협영화와 무협소설을 너무나 많이 봐서 정의를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이란 책이 있다. 제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한 어떤 사람이 나올 것 같고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만한 행동을 하는 인물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안나온다. 시대의 영웅 뿐만 아니라 그냥 영웅도 안나오고 누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도 안나온다. 그저 페초린이란 인물의 여자 관계가 나올 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한동안 멍했다. 도데체 우리시대라는 단어는 왜 들어갔고 영웅이란 단어는 왜 들어간 것인가? 혹시나 번역한 사람이 잘못 번역한 것인가? 잘못 번역했어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번역했을 텐데 그 비슷한 느낌을 나는 어디어 얻어야하는 것일까?


뭐 솔직히 끼워 맞추면, 아주 좋게 평을하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란 인간이 무엇을 평가할 때 장점을 먼저 보기보다 단점을 살펴서 생기는 비판 혹은 비난일 수 있다. 아니 그냥 내가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좀 처럼 고전이라는 책이 누군가에게 칭송받는 것을 싫어하기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러시아의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까? 


내가 하는 이 투덜거림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어짜피 나는 투덜거릴 것이기에 조잘조잘 떠들어봐야 겠다. 



이 이야기에서 풀어내는 방식은 꽤 독특했다. 뭐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액자방식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데 뭐냐면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회상이나 누군가의 글 따위에 의해서 핵심 이야기를 듣게 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는 물건을 나르던 이등대위의 말에 의해서 그리고 그에게 얻게된 페초린의 일기를 통해서 페초린이란 인물이 겪은 일을 보게 된다. 이 독특한 이야기 풀이는 꽤 자연스럽게 겉에 싸여있는 이야기와 속 이야기가 어울리게 만들었다. 


문제는 겉 이야기에 담긴 속 이야기에서 발생한다. 속 이야기라는 것은 페초린이 만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강렬한 느낌의 사랑이야기가 없었다. 뭐랄까 굉장히 강렬할 로맨스가 나올듯 말듯 하면서 안나오는 느낌이랄까? 책의 마지막까지 읽었음에도 나타나는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이 소설은 허무개그를 원했던 것인가? 


흔히 소설의 기본이라 불리는 기승전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뭐랄까 도입부 이야기가 시작되고 사건을 고조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 사건의 핵심을 말하기 위해 주인공의 고뇌 혹은 대립 등이 절정에 이르른 다음에 그에 대한 해소 또는 극적인 장면이 이야기 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는데 어느 순간 페초린의 진실한 사랑놀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결국 페초린은 어느 누구와도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었다. 라는 식으로 끝나고 만다. 


뭐 형식 파괴라는 면에서 허용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다. 바로 이야기의 핵심이다. 소설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또한  디에 시대가 있고, 어디에 영웅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을 도통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제목이 주는 진지함도 없었고 내용상 빛어지는 강렬한 멜로도 없었다. 



이 책의 작가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지몽해하다고 했다. 그의 목적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혐오스러운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제목에 낚여서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그런데 그게 과연 독자들의 잘못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제목을 작가가 그 의도가 잘 반영이 되도록 표현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지 않았으리라 본다. 소설이라는 것이 꼭 누군가가 알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은 누군가와의 대화와 비슷한 것이다. 


소설을 혼자만 보고 납득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공감해줬으면 좋겠고, 그에 대한 느낌이 표현되는 것을 통해서 소통하기 위한 용도로 소설이 쓰여진다. 더불어 그 소설이 시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면 혹은 감동을 줄때 그 책은 고전으로 칭송받는다. 허나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내용면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제목은 책의 일부분이다. 제목은 사람들에게 그 책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애의 영웅>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때문에 사람들의 반발을 더 심하게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자기 합리화(?) 혹은 자신의 아집을 부리고 있다. 


내가 그가 끄적거린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뜻이 아무리 고결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으로의 가치는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다른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그리고 그 유명한 이가 스스로 자신의 의도였다고 설명해도 나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멋진 고전이라고 인정 할 수가 없다. 


차라리 한국의 이문열이 썼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가 원했던 것에 훨씬 가깝고 더 잘쓰여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그가 말년에 내보이는 정치적 의견들은 과연 저 작품을 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를 일그러 뜨렸지만. ㅡㅡ;;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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