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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이야기

[717] 문명하셨습니다

무량수won 2013. 10. 31. 11:01

휴가다.

 

엄밀히 말하면 내일부터지만, 내 기분은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주말을 붙였다. 일주일쯤 되는 꽤 긴 휴가다. 남들은 휴가에 뭔가 뜻 깊은 일을 하라고 하지만 나는 싫다. 왜 내 휴가에 내가 즐거우면 안 되는 것일까? 내 휴가까지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일까? 난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휴가 땐 그냥 내가 재미난 일을 하고 싶다. 휴가의 의미 따위는 그런 것 아닌가?

 

며칠 전에 문명이란 게임을 구입했다. 사람들 말마따나 휴가 전체를 문명했습니다하고 외치고 끝날지도 모른다. 휴가를 즐길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미 게임을 컴퓨터에 깔아두고 몇 번의 테스트(?) 게임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양손 가득히 빠르게 그리고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컵라면과 음료수 소시지 등등이 거대한 봉지에 담겨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왔다. 어두 컴컴한 이 공간에서 잠 자는 것 외에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게임은 이 집과 나 사이의 첫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방 구석구석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게임을 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 것 귀찮아 지기에 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게임 하면서 몇 날 며칠을 보내 본 사람만이 안다. 게임 할 때의 상태에 대해서 말이다.

 

구석 구석 집안 정리가 끝났다. 컴퓨터는 이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켜놓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집안 정리를 하려는 욕심이었지만, 사실 노래를 듣지 않았어도 습관처럼 켜놓게 된다. 가끔 병인가 싶기도 하다. 아는 사람들 몇몇은 회사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어야 해서 집에서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안 그런지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변을 한번 살펴봤다. 정리되어 쌓여있는 컵라면과 마우스 옆에 쌓인 쏘시지 및 먹거리들, 키보드 옆에는 웅장하게 생긴 사이다와 콜라 1.5L가 서있고 옆에 머그잔 하나가 있다.

 

뭔가 빠진 것이 없나?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본다. 굉장히 고요하다. 집 밖의 소음도 없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한참을 둘러봤다. 집 안이야 혼자 살고 있어서 고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집 밖까지 소음도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하긴 내가 그 동안 그 공간에 그렇게 앉아 있어 본 것도 처음이니 생경 할 만도 하다. 언제나 녹초가 되어 퇴근하면 대충 뭔가로 끼니를 때우고 쓰러져 자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주말에도 종종 회사에 불려나갔기 때문에 주말에도 잠자는 일 아니면, 회사에 있었다.

 

나만의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어색하다. 하긴 이렇게 일찍 퇴근 한 것도 꽤 오랜 만의 일이니까. 스마트폰을 켰다. 그 비싼 시계는 7 17분이라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뭐 이 정도면 게임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지"라고 중얼거리며 혼자 웃었다.

 

느긋하게 게임 오프닝 동영상 먼저 보기로 했다. 오오!! 그래 나는 너희들이 사는 세계를 위해서 온 선구자다! 뭐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든다. 문명의 오프닝, 아니 세상의 모든 게임들의 대부분은 게임을 하는 나에게 선구자 혹은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 나는 마지 못해서 어쩔 수 없지요. 제가 그 부탁 들어드리겠습니다.”라면서 받아들이고 게임을 하기 마련이다. 만약 현실이라면, “능력 없으면 꺼져! 조금만 실수해도 꺼져! 가진 것 없으면 꺼져!”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될 텐데 말이다. 나를 알아봐주는 것은 게임 세계 밖에 없는 것인가 싶다.

 

게임은 나에게 바이킹들을 맡겼다. 이들을 이 세계 최강의 문명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바이킹답게 그들의 독특한 특징은 싸움이다. 그리고 물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이동 능력이 다른 종족보다 탁월하단다. 고유 유닛도 손도끼 두 개를 들고 있는 광전사와 스키부대다. “스키부대는 산에서만 그리고 겨울에만 싸우게 되는 건가?” 역시 아무도 듣지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고 만다. 그딴 복잡할 설정 따위는 버리기로 한다. 내가 기억해야 하는 건 그들이 싸움을 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 저것 한참 둘러보면서 게임을 천천히 즐겼다. 기술 발전을 위해서 도서관도 짓고, 사람들의 신앙 생활을 위한 사원도 만들었다. 처음에 주어진 싸움하는 유닛을 가지고 주변을 탐색하면서 야만인들과 싸우기도 했다. 아먄인 거주지를 부수고 얻는 돈들이 초반 문명을 발전시키고 도시를 발전 시키는데 꽤 유용했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야만인들을 찾아 다녔다.

 

다른 문명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어느덧 마을도 세 개쯤 만들었다. 도로로 각 마을을 처음 만들어진 마을에 연결시켜 놓았다. 처음 만들어진 마을은 수도라고 부른다. 수도에는 궁전이 있는데, 아마도 거기에 내 분신인 아바타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생산능력도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이 뛰어난 편이다.

 

그렇게 이것 저것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고 나서 창 밖을 보았다. 환해지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는 것이다. “아직 광전사는 커녕 야만인들 때려잡고 다니는 중인데, 벌써 해가 뜨는 시간이야?” 혼자서 투덜거린다. 하긴 좀 안정적이다 싶어지니 많이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해를 볼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 이제 그만 잠을 좀 자기로 한다. 잠을 자볼까라는 생각에 기지개를 켜다가 휴가가 아깝다는 생각에 좀처럼 의자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잠자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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