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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남자라서 볼 수 없었던 세상 본문

잡담 및 답변

남자라서 볼 수 없었던 세상

무량수won 2012. 5. 11. 03:18




오늘(2012.05.10) 인터넷을 떠돌다가 누군가가 올린 글을 보았다.


"남자가 보는 세상, 여자가 보는 세상"이란 제목만 보았을 때는 흔히 나오듯이 남녀가 연애할 때 보이는 차이점인줄 알았다. 인터넷 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인기가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여자로써 한국이란 나라를 돌아다닐때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남자친구와 다니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이 신기해서 차이를 적은 것이었다.


남자가 보는 세상, 여자가 보는 세상 - 오늘의 유머



주된 내용은 이렇다.


여자가 한국이란 나라를 돌아다니면, 이런 저런 성추행을 당하게 된다. 지나가면서 툭툭 내뱉는 음담패설 부터, 괜한 신체접촉과 각종 변태들. 이런 성추행을 한달에 한두번씩은 겪었는데, 남자친구가 생겨 대려다 주기 시작하니 이런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정말 거짓말 처럼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이 과연 같은 세상인가 싶을 정도라고 전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런일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고 말해 놀랐다고 한다. 그 글 밑으로 줄줄이 댓글로 이어지는 여자들의 하소연....



내가 이 글의 진위여부는 판가름 할 수는 없다. 더불어 이 글에 달린 댓글들 까지도 그 진위여부를 판단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이 댓글로 달리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왠지 모르게 전해지는 미안함이었다. 단지 남자라서 생기는 미안함과 더불어 그저 농담처럼 친구(여자)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얼핏 알고는 있어서 다 이해하는 척 했지만 그 심각성이 이정도 일 줄은 몰랐기에 생기는 미안함이었다. 그저 댓글만 봐도 분노가 느껴지는데 직접 당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일상처럼 지나가는 일이었다니.


내가 제대로 표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 남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말년병장(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갓들어온 신병의 느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자들의 치기어린 행동(여성들이 느끼는 성추행)이 남자들에게는 단지 지나가는 일 또는 농담이었겠지만, 여성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쌓여서 공포가 되어갔던 것이리라.



내가 경험해온 세상은...


이들에 비하면, 정말 나는 천국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선 나도 내가 보아온 세상에서는 그런 추행하는 사람을 본적이 한번도 없다.


나는 키는 크지는 않지만 덩치가 좀 있다. 덕분에 나보다 작은 사람들은 나를 키가 큰 사람으로 기억다. 일반적인 남성들의 평균키임에도. ㅡㅡ;; 게다가 얼굴에서 풍겨오는 인상도 꽤 험악(?)한 편에 속한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후로 누군가 나에게 시비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을 써본 일이 없다.


길을 가더라도 왠만한 어깨들(깡패)가 아니면 알아서 길을 터줬고(아주 사람이 많은 길이 아닌 경우), 늦은 밤 어른들이 술에 취해 비들거려도 묘하게 내 앞은 피해갔다. 술을 잘 마시진 않긴 하지만 술자리에서 조차 시비 한 번 걸려본 적도 없다.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주위 사람과 시비가 붙었을때 내가 나서서 말리면 더 이상 시비가 이어지지 않고 일이 금방 해결되었다. 


덩치가 있고 험악하게 생긴 나에게 있어서 한국은 새벽이든 밤이든 돌아다녀도 결코 무서울 수 없는 곳이었다.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내눈에 거의 띄는 일이 없었다. 진짜 정신이상한 사람들 빼고는 말이다. 또한 길을 지나다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떠들어 댄다.(주로 협박톤으로) 그러면 그 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ㅡㅡ;; 아마 왜소하고 마른 체형의 남자들과 나는 다른 세상을 보았을 수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친구들(여자)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거나 오래 전에 그런 사람들을 봤다는 이야기를 나는 곧이 곧대로 믿었다. 덕분에 "대놓고 보면 그사람도 민망했을 것이다"라는 식의 농담을 스스럼 없이 했다. 그네들이 이렇게 자주 그런 위험에 노출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지도 못한채. 또한 그런 일은 모든 여자들이 한번씩 경험 하지만 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골목길을 지날 때 여자들이 괜히 범죄자 취급하는 것같아 좀 불쾌하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쉽게 했었다.


이렇게 농담 혹은 지나가는 말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내가 그런 상황을 접한 적이 없고, 그녀들도 나에게 그런일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보던 세상은 지극히 안전한 곳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비록 변태같은 남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가야 한번 보게 되는 진풍경 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을 자주 겪는다고 어떤 여자가 쉽게 말을 할 수있을 것인가 싶다. 특히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인식 속에서 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그나마 익명의 글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해야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수치스러운 일들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그저 지나가는 농담과 다른 이의 경험담식 혹은 오래된 이야기로 건넬 뿐이었겠지...


많은 친구(여자)들과 많은 이야기 해왔음에도, 그리고 그녀들을 이해한다면서도 정작 나는 그 심각성을 쉽게 알수가 없었다. 그나마 여자들이 쉽게(익명성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인터넷에서도 내가 주로 돌아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곳이 주로 남자들이 있는 많은 곳이라 그런 이야기를 쉽게 접할 일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그냥 그런일도 있구나'하고 넘길 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사실들로 인해서 얼핏은 알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위에 링크된 글로 인해 나는 나름 여자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세상과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친구(여자)들에게 했던 내 농담과 행동이 행여나 상처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한국이란 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자들이 살아가기에 더 불리하다.


그래서 내가 본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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