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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특권 - 아멜리에 노통브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왕자의 특권 - 아멜리에 노통브

무량수won 2011. 2. 21. 14:45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을 하다보면, 항상 빠지는 고민이 있다.


'책을 사게 된 이유부터 적어야 할까? 아니면 책에 대한 느낌을 먼저 적어야 할까?'

그렇게 혼자 고민을 하다가 가끔은 읽고난 책에 대한 감상이 어디론가 사라져서,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지도 못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소설책을 좋아 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읽어온 책 중 절반 이상 혹은 절반 정도는 소설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웃긴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썩 맞는 편은 아니다. 특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소설이 있어서라기보다 소설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서적이라고 해서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속 마음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런 내가 소설을 손에 집어들 때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때다. 독특한 소재라거나 처음 시작하는 글의 문장으로 내 뱉는 말투가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흔한 소설 소재와는 다른 독특한 소재로 꾸며진 소설, 또는 오랜 시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고전 정도가 되어야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왕자의 특권은 시작할 때 나오는 소재의 독특함이 끌린 경우다.


나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되거나, 혹은 약속 장소에 가게되면 서점부터 들리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일부러 대형 서점이 가까이에 있는 장소를 약속장소로 고르는 일이 많다. 이 책을 집어 든 그날은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소설쪽으로 향했다. 이렇게 소설로 시선이 고정이 되는 때는 소설을 한동안 읽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충동적인 현상인데, 나도 모르게 소설과 비소설의 비중을 맞추려는 듯한 본능이 있는듯 싶다.


소설 분야를 훑어보다가 아멜리에 노통브란 이름을 보고 자리를 잡았다. 가끔 이름만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들이 진열된 곳을 보면 이렇게 자리를 잡고 살펴본다. 뭐랄까? 남들에게 말할 꺼리가 더 생기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랄까? 이런 저런 욕심에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 중에 하나씩은 꼭 고르려는 듯 하는 습성이 있는듯 하다.

아멜리에 노통의 소설 앞부분을 조금씩 읽었다.  그중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이 왕자의 특권이었다. 



제목에서 왠지 판타지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는데, 안의 내용은 그렇게 판타지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뭐 상상이 주 소재라고 해도 넘치는 말은 아닐테니 판타지라고 해야 하려나? 소설의 시작은 어떤 남자와 특별한 상황을 대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약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난데없이 내 집에 찾아와서 죽는 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주인공과 이야기 하던 남자는 주인공에게 절대 신고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을 때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렇게 소설은 상상에서 시작을해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흥미를 위해서 주인공은 당연히 죽은 남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게 되고 죽은 남자에 대해서 어찌처리할까 고민을 하다 죽은 이와 자신의 외모가 비슷함을 핑계삼아 죽은이와 신분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죽은 남자의 삶 속으로 그는 걸어 들어간다.

주인공은 어떤 선택에 앞서서 끊임 없이 상상을 한다. 혼자 열심히 상상한 후에 선택을 한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상상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물론 선택의 문제도 드러나지만 핵심은 상상이었다. 결말은 그 때문인지 조금 허무하다. 오로지 시작이 상상에 의한 선택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상상에 의해서 결론을 내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상속의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는 조금은 엉뚱한 결말을 맺는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선택과 상상" 사람들은 생애에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절망감을 상상하게 된다. 이미 그 선택이 예견 되었다 하더라도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선택을 하고 기뻐하는 것은 자신이 미래를 좋게 상상하고 있다는 뜻이고, 선택을 하고 절망스런 표정을 짓는 것은 자신이 미래를 나쁘게 상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결과가 뻔하다고 해도 미래는 다가온 시간이 아니기에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상상속의 생활 속에서 선택을 해 나가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속의 집에서 상상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미녀와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생활. 어떤 나라의 왕자나 할 법한 생활을 상상을 바탕으로 선택된 상황에서 즐긴 어떤 남자의 이야기다. 글을 읽는 사람들의 다수는 이런 생활을 즐길 수 없는 처지일 테니...



소설을 읽다가 순간 착각을 했었다. 많은 소설들이 그렇지만 작가 소개란에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은 작가와 비슷하게 생겼겠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아멜리에 노통의 소설에 실려 있는 그녀의 사진 덕분에 나도 모르게 주인공이 여자라고 생각하고 읽어 나갔다. 소설 처음부터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급이 없었기에 착각은 당연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나도모르게 남자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여자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뭐 굳이 이런 식의 결론에 도달할 필요는 없는 상황인건가?

누군가 나에게 추천 여부를 묻는다면, 가벼운 읽을 거리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뭔가 고민하게 만들 정도의 책으로서는 낮은 점수를 줄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책이란 것이 어찌 생각하고 어찌 느끼느냐에 따라서 좋은 책이 될수도 있고 나쁜 책이 될수도 혹은 그저 그런 책이 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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