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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한 부분 읽기 - 외국출신에 대한 흔한 착각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책의 한 부분 읽기 - 외국출신에 대한 흔한 착각

무량수won 2012. 4. 18. 11:12

한문학에 눈을 뜨기 전에는 나도 대다수 서양인처럼 알게 모르게 서양 문물을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했겠지만, 한시의 세계를 알고 난 뒤에는 그 서양 중심주의라는 병을 유쾌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이백(李白)이나 왕유(王維), 이퇴계의 시에 담긴 그 명량한 흥취와 아담한 고적(孤寂), 무욕(無慾)과 지족(知足)을 서구의 시구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들에게는 우리의 '자유'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개인적 공간과 개인적 시간 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 예컨데 술을 권하거나 노래를 시키거나 회식에 초대받았을 때 본인의 치향이나 사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등이 그들에게는 이기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그런 자리에서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사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크게 봐서는 '자본주의'와 '세계적 종속'의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자 했던 그들이 '식구들'의 '일심단결'을 우선시하는 가족주의적 종속의 미시 담론을 절대화한 셈이었다.


... 하나는, 한국학을 한다는 사람을로서 한국인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직까지도 국적과 혈통을 대개 동일시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화두'를 하나 던져보고 싶은 생각이었다.한국과 혈통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한국인이 되고싶어하고 될 수도 있다면, 과연 한국인이라는 것이 '핏줄'로만 결정지어지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 당신들의 대한민국 01 - 박노자 지음, 서문 중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의 서문만 읽었다. 이 서문이 TV가 얼마나 대중과 나의 평소 생각을 조종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 우선 나는 박노자를 TV에서 우스꽝스런 광대역을 스스럼없이 하는 다른 외국 출신의 한국인들 처럼 기묘하게도 한국을 너무 짝사랑해서 귀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박노자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박노자에 대한 이야기나 그가 남겨놓은 곳곳의 흔적(글)의 여파로 대충 짐작은 하고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서 외국 출신의 한국인들에 대한 것은 그저 TV 속에서 나를 웃겨주고, 나의 부모를 웃게 해주는 약간 모자른듯하면서도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이라는 것이 평소의 내 생각을 떨쳐내지는 못했었다. 언제나 내가 내뱉는 말은 그들이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스운 존재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TV에 나오는 몇몇 외국인들과 외국 출신의 한국인들이 대중을 웃기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이렇게 무시(?)당할 정도로 무식한 사람들은 아님을 잘 알지만, 그래도 어느새 굳어진 선입견은 어쩔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제서 서문을 읽은 주제에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서문에서 내가 얼마나 그런 선입견 속에 빠져있었던 것인지를 새삼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문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느꼈던 것은 '어 이양반 한국학을 했다더니 그냥 가나다라만 쓸 줄 아는 것이 아니었네?'라는 것과 '젠장 이런 서양인도 나보다 한문을 더 잘하다니 왠지 화난다.'라는 것이었다.


첫 생각은 내가 너무나 TV에 나온 외국인에게 익숙해졌던 나머지 그들을 바보로 생각했기에 떠오른 것이고, 두번째 생각은 이미 귀화한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귀화해도 외국인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두번째 생각에서 나타난 내가 느낀 질투(?)같은 감정은 한국학을 전공해 한문을 능수능란하게 쓰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부러움에서 뛰쳐나온 질투가 아니었다. '내가 외국인보다도 더 모른단 말이야?'라는 생각에서 나온 질투였기에 뿌리가 다른 생각이다. 평소에 말하고 다니던 나라면, '나보다 아는 것이 많네?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보는게 화난다.'라는 식으로 하는 질투가 나와야 정상이었던 것이다.


앞서 써놓은 두번째 생각처럼 내가 무심결에 했던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서문에 등장하는 그의 귀화 이유에서 알수가 있었다. 외국 출신의 한국인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너무 두껍게 쌓여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 선입견에 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노자가 귀화를 하면서 내놓았던 두번째 생각인 한국인이라는 것이 '핏줄'로만 결정지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함정에 내가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나는 어떤 선입견에 빠져있지 않아', '난 민족주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어'라고 자신하던 내가 그가 던저버린 화두에 같혀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가끔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한국말이 어수룩해서 TV 속에서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원래 쓰던 언어를 말할 때 보면 그렇게 유식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면서 외국인은 그리고 외국계 한국인은 말이 어눌할 뿐이지 무식하거나 멍청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를 하나들어보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있다. 하다못해 동양인의 얼굴과 한국출신 부모를 가진 사람이 국제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를 비롯한 대중들은 그를 결코 쉽게 보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할리 같은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TV에서 그를 비롯한 절대 다수의 외국인과 외국 출신 한국인에게는 웃기는 역할만 주어지다보니 바보같고 웃긴 사람으로 희화 되고 있다. 그가 국제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사람들은 매번 놀라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우습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한국의 TV에서는 그렇게 외국인을 우습게 만들고 외국 출신의 한국인 또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물론 그들이 원한 길일 수도 있었겠지만, TV가 그렇게 만들고 한국의 대중이 그렇게 만들어왔던 탓은 아닐까?



많은 화제를 모았던 프로인 <KBS, 미녀들의 수다>를 내가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런 외국인에 대한 외국계 한국인에 대한 희화와와 과도한 한국사랑이야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외국인과 외국계 한국인을 우습게 바라보고 우습게만 만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평소 그렇게 말했음에도 내가 그런 선입견에 푹빠져있었다는 생각을 박노자의 서문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다. 


결국 TV가 만들어 놓고 아주 오랜 시간 지배해 온 선입견은 아무리 말로 없다고 표한하고 다닌다 해도 그리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깨달았다. 이 포스팅은 이상한 상상과 모순의 세계에 빠져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글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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