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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한 부분 읽기 - 권위의식 본문

독서 토론 모임

책의 한 부분 읽기 - 권위의식

무량수won 2010. 7. 23. 17:00

"내니 십 년이나 친딸과 같이 기른 것을 미워서 그랬겠나. 저도 차차 낫살이 많아가고.... 평생 기생 노릇만 할 수도 없을 터이니까 어디 좋은 자리를 구하여 일생 편히 살 만한 곳에 보낼 양으로 그랬지. 그런데 김현수라는 이는 부자요, 남작의 아들이요, 하기로 그리로 보내면 저도 상팔자겠다 하고 그랬지."
하며 눈물을 씻는다.

형식은 혼자 놀랐다. 노파의 '평생 기생 노릇만 할 수도 없으니까' 하는 말을 듣고, 그러면 김현수에게 억지로 붙이려 한 것이 영채의 일생을 위하는 뜻이던가 하였다. 노파가 영채를 죽인 것인 다만 천 원 돈을 위하여 한 악의가 아니요, 영채의 일생을 위하여 한 호의인가 하였다.

그러면 영채를 죽인 노파의 마음이나 영채을 구원하려 하는 자기의 마음이나 필경은 같은 마음인가 하였다. 그러면 필경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표준과 사상이 다르므로이러한 일이 생긴 것인가 하였다.

이 때 '어머니'가 형식에게 극히 은은하게,
"이 주사께선들 얼마나 슬프시겠소. 그러나 그것도 다 전생의 연분이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나요. 세상이란 그렇지요."
하고 고개를 돌려 노파에게,
"자 울지마오. 다 전생의 연분이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나? 시장하시겠소. 조반이나 먹읍시다. "
하고 벌떡 이렁나면서 혼잣말로,
"어쩌나, 장국밥을 시켜올까, 집에서 밥을 지으랄까."
하고 머뭇머뭇하더니 휙 문 밖으로 나간다.



형식은 생각하였다. 이것이 그네의 인생관이로구나. 인생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슬픈 일은 다 전생의 인연이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한참 눈물을 흘리고는 곧 눈물을 씻고 단념한다. 그네의 생각에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얼른 눈물을 씻고 마는 것이 좋은 일이라한다.

그러므로 그네는 모든 일의 책임을 다 '전생의 인연'과 '팔자'에 돌리지, 결코 사람에게 돌리지 아니한다. 영채가 기생이 된 것이나 김현수에게 강간을 받은 것이나 다 그 책임은 전생의 인연에 있는 것이요, 결코 노파에게나 영체에게나 또는 김현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한다.

따라서 영채가 정절을 지키는 것도 영채라는 사람이 특별히 좋아 그런 것이이 아니요, 영채라는 사람이 전생에 연분이 그러하여 자연히 또는 아니하지 못하게 정절을 지킴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네가 보기에 특별히 좋은 사람도 없고 특별히 좋지 못한 사람도 없고, 다 전생의 인연과 팔자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네의 인생관과 형식의 인생관이 얼마큼 일치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인생관의 근본적 차이점은 이러하다.

형식은,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인 또는 사회의 노력으로 개인이나 사횡가 개선될 수 있고 향상될 수 있다 하고, 그네는 모든일의 책임이 전혀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니 다만 되는 대로 살아갈 따름이요, 사라의 의지로 개선함도 없고 개악함도 없다 한다.

형식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올지! 이것이 조선사람의 인생관이로구나.'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어머니'모양으로 잠깐 눈물을 흘리다가 얼른 눈물을 그치지 아니한다. 노파는 '세상'을 보는 외에 사람을 보았다. 영채의 따끈따끈한 입술의 피가 자기의 손등에 떨어질 대에 노파는 사람을 보았다.

- 무정 - 이광수 지음. 60번째 장면 중에서...


형식은 촉망받는 지식인. 노파는 영채가 있던 기생집 주인이다. 노파는 영채를 김현수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기생임에도 정절을 지키던 영채는 영문도 모른채 김현수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할 뻔한다. 이를 어린시절 알고 지내던 형식이 구하게 되었다. 원래 영채는 형식에게 의지하려 하였으나 자신이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쉽게 고백하지 못하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되고,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영채는 굳은 마음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고 따랐던 기생 월향이 처럼 자살을 하려고 대동강으로 간다는 편지를 남기고 서울을 떠났다. 그 편지를 읽은 형식과 노파는 평양으로 오게 되었으나 영채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서울에 오기 전에 있었던 평양의 기방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형식에게 사람은 노력으로 바뀔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꼭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하였고,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바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생같이 당시에 천하다 생각되던 직업을 가진 이들을 무시하였다. 영채가 그를 처음 찾아왔을 때도 그녀가 기생일까 아닐까에 대한 의문을 먼저 품었다. 그 생각 때문에 그녀를 천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드높여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그리 무시하던 기생임에도 영채가 보여준 행동과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노파의 눈물을 보면서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노력에 의해서 바뀔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알던 어떤이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형식과 꼭 같은 생각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물론 현재라는 시간적인 공간과 저 소설이 쓰여지던 시간적 공간 모두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가지게 하는 환경이긴 하다. 현재라는 시간이 소설 속 시간보다 더 자유롭고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덕분에 형식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매우 많고 또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속 시간에서나 현실에서나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분명 한계란 것이 존재 하고, 성공한 이들처럼 노력한다고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공부하고 싶다고해서 공부를 해서, 형식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형식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의 경우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알던 이의 생각은 이러했다.

세상에 돈이 없어도 공부할 수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공부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면서 힘들게 고생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노력이 있다면 좀 더 나은 삶, 좀 더 대우 받는 삶을 살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도 해 볼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하지만 그 기회가 많지 않고, 처한 상황이 다른 이들보다 불리하면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남들이 보기에 대우 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그들이 꼭 노력없이 산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이 있고, 각자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이 있다. 누구는 공부가 재미난 놀이가 될 수있고, 누구는 춤이 재미난 놀이가 될 수가 있다. 공부가 재미난 사람이 춤에 관심이 없는 데, 노력만 한다고 훌륭한 춤꾼이 될까? 아니면 춤이 재미난 사람이 공부에 관심이 없는데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공부로 성공할 수있을까?





그렇다고 여기서 나타난 노파 마냥 그저 그렇게 운명에 맡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형식이 하는 것처럼 자신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있으니 노력하지 않은 자들은 천대받을만 하다는 식의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지만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못났다고 생각되면, 그사람을 무시하기 일쑤다.


요즘 검사나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주된 문제들은 그들의 권위 의식에 관한 것이다. 뭐 섯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그런 권위의식은 이 소설에서 형식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이렇게 권위의식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지만 사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권위의식이 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떤 일이든 내가 했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내가 노력해서 이루었다고 다른 이들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못이룬 것이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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