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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컨텐츠 연구

남자와 여자, 그리고 블로거

무량수won 2011. 5. 16. 23:37



오늘 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내가 읽던 글의 주인공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으허억!!!!!!

뭐 그동안 글을 쓰던 사람이 자신이 여자라고 했던 적은 없었다. 특별히 여자인 척을 했던 적도 없었고, 여자일 꺼라는 뉘앙스를 그의 글에서 풍긴적도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의 글에서 여자의 향기를 맡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하다. 그렇다. 나혼자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생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여자인줄 알았던 블로그 주인이 알고보니 남자일 경우. 남자인줄 알았던 블로그 주인이 알고보니 여자인 경우. 블로그에 사람들은 자신을 밝히는 공간에 자기의 얼굴을 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어떤 배경을 올리거나 유명작가의 사진을 올리는 일이 태반이다. 또한 특별히 여자라고 해서 블로그를 아기자기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오히려 남자 블로거들이 더 아기자기하게 꾸밀 때도 많다.

더불어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고서는 자신의 성별을 굳이 밝히지도 않는다. 물론 이웃 블로거들은 대충 블로그 주인에 대한 약간의 신상정보(남자인지 여자인지와 아이인지 어른인지 등)를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블로그의 특성상 이웃의 방문도 방문이지만 블로그의 글을 지나가다 보게 되는 일이 많은 편인지라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다지 블로거의 약간의 신상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보려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몇번 혹은 자주 글을 읽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블로거의 이웃이 되어 있거나 숨어있는 팬이 된다. 특히 이 숨어 있는 팬이 되면, 그 사람의 글이 좋아서 찾아가는 것이기에 애써 블로거의 신상을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본 글에서 블로거가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이상.



내가 그 블로그의 이런 숨어 있는 팬이었다. 딱히 글을 남기지는 않지만 가끔 가서 보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 블로거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그가 남자임을 알았다고 해도 읽었을 것이고 여자라고 했어도 읽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남자인 사실이 혹은 여자인 사실이 내 손가락이 그 사람의 블로그에 클릭을 더 하게 만들 것인지 덜 하게 만들지는 장담 못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블로거를 여자라 믿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그의 블로그 디자인이 여자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의 글이 여성스러움이 뭍어나는 글도 아니었는데 난 왜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득 예전에 사람들과 자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몇몇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나는 게임에서 여성 케릭터를 자주 한다. 가끔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여자 케릭터를 한다며 주변에서 뭐라 하긴 했지만 나는 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랬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여자 케릭터를 했던 것도 아니고 가끔씩 남자 케릭터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 초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 케릭터를 하는 남자들이 자신을 여자인척 꾸며서 다른 고렙유저들에게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등을 뜯어내는 장난(?)스러운 사기들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 되기 이전 온라인 채팅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었을 때는 채팅을 통해 자신을 여자라고 속이는 남자들이 종종 있었다. 아직도 이런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전에는 하도 많아서 여자가 여자라해도 믿지 않을 정도였다.


왜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느냐면,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든지 여자라고 하면 무조건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 것이 있다. 일단 뭔가 줘야 하고, 좀 더 잘보이려고 애를 쓰는 행동이 나타난다. 예전 온라인 채팅이 활성화 되었을 때도 남자들은 여자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 그렇게 찍접대다 보면 다른 남자의 등장이 반갑지가 않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끼리 서로 물고 뜯기에 바빠진다.

마지막에 채팅 잘하는 남자가 채팅공간에 남게 될까? 아니다 남자들은 자기들 끼리 싸우다 기분상해서 다 나가고 여자들만 남는다. ㅡㅡ;;;

게임에서도 비슷하다. 게임에서도 여자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남자 유저들은 온갖 공세를 퍼붓는다. 아이템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귀찮을 정도로 귓말을 보내서 호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모두 무시하면서 오로지 여자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주변의 남자들과는 종종 다툼을 한다. 마치 수컷 동물이 암컷을 하나두고 싸우는 듯이. 뭐 요즘이야 이런일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자 유저들이 나타났다 싶으면 설레발 치는 것은 여전하다.

블로그는 어떠할까? 블로그는 좀 덜한 편이다. 그나마 블로그에선 다들 성별을 애써 밝히는 편이 아니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가끔 그래 아주 가끔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설레발을 치는 블로거들이 있다. 슬쩍 봐도 찝적댄다고 냄새가 날 만큼의 글을 쓴다. 온라인 경험 15년을 넘기는 동안 늘어난 것은 이런 눈치뿐이다. ㅡㅡ;; PC통신 시절부터해서 온라인 게임과 블로그까지.. 어휴...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참 신기하다." 요 한 문장이 머리 위를 뱅글 뱅글 돌고 있다. 남자인지 혹은 여자인지에 대한 성별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말하고 다니던 나조차 이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본능인건가? 온라인에서 만큼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싶은 것은 과도한 욕심이었던 것일까?
그 블로거가 누구인지는 차마 밝힐 수가 없다. 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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