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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날. 본문

헤매다./전국일주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날.

무량수won 2012. 2. 6. 19:13


걸어서 전국일주라는 것을 하면서 내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웠던 순간이 한번 있었다.

그건 내가 씻지 못하고 꾸미지 못해서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걷기 여행을 시작한지 열셋째날이 되는 낮이었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걷기는 전라남도에 접어들어 함평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제 막 언덕하나를 넘어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여행내내 그래왔던 것 처럼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길 건너편에서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나를 불렀다. 명확하지 않은 소리로 손짓을 하면서 나를 부르기에 난 순간 당황했다. 비록 낮이었지만 인적이 드문 길에서 험상궂은 차림의 아저씨인 나를 부르다니. 게다가 요즘은 꽤 위험한 뉴스들이 나오는 시대인데, 왜 겁도 없이 나를 부르는 것일까? 오히려 내가 그 아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갈길이 멀었기에 귀찮아 하는 마음도 꽤 컸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마음에 나를 부르는 아이에가 다가갔다. 아이는 손짓과 발짓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 보는 듯 했다. 이리저리 손진하는 것을 봐서는 그 아이는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함평까지 가고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 말하려고 자꾸 손짓을 하는데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말을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이 자리를 빨리 떠날수 있을지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자꾸 나에게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다가 아이에게서 대화를 포기한듯한 눈빛을 보았다. 아니 내가 포기하고 싶어서 미안하다며 도망쳤다. 그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빠르게 그 자리를 도망쳐 내리막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걸어서 가는 동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온갖 정의로운 척,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 등의 잘난 척을 했지만 정작 대화를 쉽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황해 그자리를 도망치기에 바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이용했으면 글자를 가지고라도 대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한채 도망치려고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쓸데없이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저 말을 하지 못할 뿐인데 괜한 편견이 사로 잡힌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불쌍하다 생각하고있던 것은 아닐까? 그 때문에 자꾸 아이와의 대화를 피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이 이런 행동밖에 할 수 없고 이런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쩌면 부끄러워해서도 안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날의 느낌을 따로 적어두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왜 부끄러워 했고 자꾸만 내 자신이 그렇게 못났다고 생각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아이의 불편함에 내가 더 당황했던 일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행이랍시고 다니면서 주변을 살피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나혼자 걷기에 열중했던 사실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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