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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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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토론 모임

2월 독서토론 모임 후기

무량수won 2012. 2. 20. 14:02



일요일의 아침이란 누군가의 전날의 광란을 목격케해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날이다. 다른 모습도 있는데 왜 하필 이런 광경이 머리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귀에 이어폰을 꼽아 기분 전환을 위해 신나는 노래 목록을 선택하고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며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휴일 오전의 지하철이란 한산함과 썰렁함이 공존한다. 사람들이 없어서 한산하고,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서 썰렁하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독서토론에 사용할 책, 남는 시간에 읽을 시사잡지 하나가 들어있다. 양쪽 어깨에 메는 백팩이 편하고 요즘 유행이라고 해서 하나 구입해서 메고 다니는데 확실히 손으로 들고다니는 손가방 보다는 무게감이 덜하고 편하다. 혹시나 잡지나 책이 카메라에 의해서 구겨지진 않을까 걱정도 들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음악에 집중하고 무심한 얼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철 창문을 바라본다.

그렇게 40분이 지나고 내가 선택한 음악 목록도 한바퀴가 다 돌았을 쯤 신촌에 도착했다. 세상 살이가 힘들다고 뉴스에서는 떠들지만 신촌에 있는 젊은 아이들에게는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런 무리 중에 하나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저렇게 차려입고 일요일을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겉보기엔 나도 그들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카페모카를 시키고 마치 독서토론 하러왔음을 알리듯 모임 책을 꺼냈다. 모임까지 아직 30분의 여유 시간이 있다. 습관처럼 시자잡지를 펼치고 집중해서 글을 읽어나간다. 집중해서 읽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한글들은 마치 한글이 아닌 듯한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번역 투의 투박함 보다 한국과 그리고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나라의 이야기라서 다가오는 거부감이 그 첫째요. 너무나 관념적인 이야기가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녀서 도통 그 개념을 정리하고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것이 그 둘째다.




모임시간이 다가오자 가혹한미련님이 익숙한듯 내가 앉은 테이블을 노크한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고 모임 책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키님이 도착하고 나서 본격적인 독서토론을 시작했다.

전체적인 느낌을 묻는 질문에 키님은 낯선 단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쓰여진 것은 몇년 되지 않았지만 옛 단어를 사용하는 작가였던 박완서 선생의 글은 그런 단어에 익숙치 않은 세대 혹은 고전 한국 소설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맞다. 친절한 복희씨는 오래된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한국의 인터넷과 소설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오래된 꾸밈글들이 그를 낯설게 했을 것이다.

가혹한 미련님은 이 책을 자전적 소설의 느낌이 강했다고 말했다. 박완서 작가의 다른 글에서도 그런 식의 글이 많은데 이것도 그러해서 마치 수필을 보는 듯했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랬다. 너무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소설책을 읽는 것인가 싶어서 자꾸만 겉장을 살펴보았었다. 분명 겉장에는 소설집이라고 쓰여있는데 소설의 내용은 수필같았다. 만약 누군가 소설집이 아니라 수필집이라 이야기 했으면 나는 믿었을 것이다.

이 소설 모음집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것은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대충의 줄거리는 남들의 요구에 잘 응해주던 수동적인 인물인 나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주변인물에 대해, 나는 불만이 쌓여간다는 이야기다.

당신에게 있어서 존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속에 산다는 것과 나로써 산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다 보니 이런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존재였었지? 비중을 두자면 나라는 인물은 사회속에서 내 위치를 찾기보나 나를 존재 시키고 사회가 받아들이기를 바랐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자존심도 쎄졌고 고집도 쎄졌다. 사회의 부조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에 좀 처럼 사회라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튕겨져 나왔다.

나는 나같은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천재거나 정신병자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천재요, 인정받지 못하면 정신병자다. 천재는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지만 정신병자는 그냥 '병신'이란 타이틀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병신'이 제일 타당하다. 스스로를 욕하는 해괴한 성격도 딱 그런것 같고 뭐... 그렇다.

소설집에 있는 단편들을 하나씩 곱씹어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중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소설은 나와 다른 의견들이 좀 많이 나왔는데 나는 이 소설에서 작가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너무 당당하게 인정하고 툭 내뱉어 버리는 글에 감탄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서 그리움을 읽어냈고, 축복이란 단어를 읽어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이기심이란 단어는 자기합리라는 단어로 바뀌어 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와 느낌의 등장에 다소 당황했지만 굉장히 즐거운 당황이었다. 내가 찾아내지 못한 아니 내가 느끼지 못한 느낌을 덤으로 얻은 느낌이니까.

그렇게 이야기는 존재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사랑에서 결혼이란 제도로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해피엔드"를 통해서 타인의 시선이란 단어가 사용됨으로 인해서 다시 존재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에 대한 느낌을 토론하는 것은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토론을 통해서 내가 이 소설모음집의 느낌을 전한다면 '오래된 삶과 오래된 시선'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광화문을 잠시 들렸다. 해가 질 시간이었고 서점도 들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론을 마무리 지으면서 항상 그래왔던 것 처럼 다음 모임에 사용될 책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항상 그랬지만 참고를 해보겠지만 책을 정하는 날 내 기분에 따라서 맘대로 바뀔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라 당부했었다. 그래서 더 좋은 후보가 될 책을 둘러볼 겸하는 걸음이었다.

해질녘에 광화문을 찍고 주변을 돌아본 뒤, 대형화가 되다가 공룡이 되어버린 교보문고에 갔다. 일요일 오후의 광화문 교보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고 대부분은 이리저리 훑어보고 그중 일부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눈다. 나도 그 무리에 동참해서 소설 코너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뒤적였지만 적당한 후보가 될 만한 책은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북적거리는 서점에 오래 있기도 거북하고 특별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얼마 있지 못해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는 초저녁부터 만취된 아저씨부터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들과 어디로 향하는지 알수 없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오전의 한산함과 썰렁함이 아닌 북적거림과 어지러움이 지하철의 공기를 채우고 있다.

이번에는 조용한 음악 목록을 선택하고 컴컴한 유리에 비춰지는 내 뒤의 지하철 안 풍경을 바라봤다. 복잡해 보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리움 가득한 음악이 내 귀를 속삭이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렇게 독서토론이 있었던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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