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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본문

독서 토론 모임

프로파간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무량수won 2013. 4. 25. 19:13




들리지 않는 소음. 모순적인 이 문장은 현대에 있어서 결코 모순적일수 없는 문장이기도 하다.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광고를 마주하게 되는가? 또한 당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소비를 조장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가? 마지막으로 당신은 전적으로 당신의 의지와 필요에 의해 합리적으로 소비를 하고 있나? 이런저런 광고가 넘치고 그로인해 항상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은 당신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뭔가 복잡한 듯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 때문이다. 2013년,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는 번역되지 않은채 종종 사용된다. 사람들은 주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정치적인 의도로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하는 행위로 의미를 두고 이용한다. 또한 사람들은 이 단어를 이런 행위에 대한 비난 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 당신이 만약 기사나 누군가의 댓글에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이 상대를 비난 혹은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생활 환경과 습관에 따라서는 이 단어가 익숙치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대중적이지도 않은 이 단어가 제목인 책을 굳이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이유는 한번 쯤 이 단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라는 것과 정치, 대중이라는 요소들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가져볼 필요도 있었다.




일단 책을 읽고 난 후기이니 책에 대해서 그리고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도록하자. 프로파간다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많은 것을 이 글에서는 좀 생략하기로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원서로 읽는지 혹은 어떤 출판사의 책을 입수해서 읽는지 등등에 따라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수 있겠지만, 내가 읽은 책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바로 중심이 되어야 할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와 에드워드 버네이스라는 인물을 함축시켜서 후대에 설명을 덧붙이 머릿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릿말과 본문은 시간적 차이도 꽤 크다. 2004년과 1928년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왜 머릿말 따위를 따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건 이 머릿말의 내용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머릿말의 내용보다 길고,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작은 논문 하나를 첨부시킨 듯한 이 머릿말은 버네이스의 의도와 글에 대한 총평을 나름 분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 버네이스의 글인 프로파간다에 대한 평가를 방해받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머릿말을 평가하자면, 2013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라는 사람에게 1928년이라는 시간 사이의 차이를 어느정도 설명(?)해줄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차이 때문에 누군가의 부연설명을 먼저 읽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잠시 미뤄두고 읽어야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양적인 이유도 이유지만, 이 머릿말에 의해서 지금 시간에 읽는 독자들에게 괜찮은 연결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크게 머릿말과 본문으로 나눈 것이다.


본문의 경우, 광고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본인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그 광고들이 어떤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기도한다. 그래서 머릿말에서 평가되는 것처럼 버네이스는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은 단어로 인식시키고 홍보전문가라는 직업에 대한 위상을 좀 더 높이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깊게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내 설명은 함축적인 머릿말과 과거 속에서 가치가 있는 글이 어울러진 책이라는 정도가 된다. 다시 말해 애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는 과거 사건의 중심 혹은 시대의 중심에 선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이야기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시대적 상황 설명이 바로 머릿말 속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내 관점에서 볼때 읽어도 그만 안읽어도 그만인 책으로 분류할 수 있고, 딱히 추천에 대한 점수를 높게 쳐줄수는 없다. 아무래도 내 기준은 언제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기준이 있다보니 그 책의 의미보다 얼마나 쉽게 읽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의미 또한 대중이 읽을만한 책인가 아닌가도 크다고 본다.


반면에 꼭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광고와 관련된 분야와 정치적인 어떤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인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이 책은 아마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크게 두가지를 던질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2013년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광고라는 세계가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에서 언급되는 분량이 적지만 핵심으로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다. 무엇이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을 광고라는 수단을 통해 소수의 엘리트가 조종(?)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버네이스의 경우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가 될 수있는 이런 행위가 좀 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1928년이라는 시대상황을 감안하지 않고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특정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에서 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을 중심으로 나라가 경영되고 그에 대한 합의를 통해서 운영되는 제도다.


그런데 그 합의라는 것이 쉽지많은 않다. 특히 가장 큰 부작용은 다수에 의한 소수를 향한 폭력과 무지한 다수에 의해서 잘못된 방향인 줄 알면서 흘러가는 것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소수엘리트에 의한 정치체제를 옹호해야 하는 것일까? 또한 광고라는 수단으로 대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중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소수 엘리트에 의한 체제가 효율적이고 옳다고 했을 때, 민주주의란 체제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버네이스는 민주주의와 그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이 모순됨을 알고는 있었던 것일까?


더불어 앞선 질문과 연계해서 질문을 던진다면, 맨처음 던져보았던 질문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에 의해서 설득당한 소비는 과연 옳은 소비인가하는 것이다.



결론은 각자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다른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만약 이 책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해야한다면, 단순히 기업과 광고에 대한 이야기에서 머물것이 아니라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아울러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선 결론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할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한 것이다. 정치에 관한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단순하게 다시 질문을 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


프로파간다는 괜찮은 것인가? 아니면 경계해야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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