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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힘, 듣기의 힘 - 다치바나 다카시 본문
책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언제나 책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하게 되는 고민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책에 관련된 글은 책을 읽고 쓰게되는 감상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 감상이란 것은 사람의 개성에 따라 모두 제각각으로 표현된다. 내가 처해 있는 입장이란 것이 있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며, 내가 싫어하는 것이 모두 반영된 것이 감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쓴이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 감상이다.
직업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이들을 배려해 객관적인 감상을 적을 이유는 없다. 직업으로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완벽한 객관화를 시킬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또 그렇게 쓰려고 하는 기자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글에 녹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감상이란 것은 글자 그대로 感想(감상)이어야 한다. 느끼다의 의미를 가진 感(감)자와 생각하다의 의미를 가진 想(상)자의 결합인 것 처럼. 감상은 느낀 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객관적일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비난이나 받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이 느낀 감상과 다르다고 감상을 적은 이에 대해서 비난 하는 이들이다. 감상을 적는 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적는 것일진데, 글쓴이와 다른 생각이 있음을 표현하는 수준이 아닌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라 할 수 없다. 그와 더불어 누군가의 감상에 자신만의 감상을 표현한 이에게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 또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른 이의 생각을 듣겠다는 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에 나타난 읽기의 힘과 듣기의 힘이란, 누군가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누군가의 생각을 잘 읽어봐주는 힘이라 생각한다. 읽는 다는 행위와 듣는 다는 행위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닌 다른 이의 생각을 보고 듣는 다는 것이니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책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 읽기의 힘, 듣기의 힘 "은 일본에서 유명한 이들이 책의 제목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것을 담은 책이다. 정확한 표현은 심포지엄인데, 유명인 세명이 모여 수다를 떤 것이라고 표현하든 학술적인 심포지엄이라고 말하든 나는 그닥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사람들간의 대화의 장이니까.
이들은 일본에서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중 다치바나 다카시 외에 아는 이가 없다. ㅡㅡa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 역시 다시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였으니 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언제나 가볍지 않다는 믿음과 어렵지만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를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끔 구입을 한다. 그렇다고 그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그의 책은 세권 정도 읽었다. 한국에 다치바나 다카시를 대중적으로 알렸던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라는 책은 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늘어 놓는다면, 왠지 일본에 사는 최고의 지성이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푸념서(?)의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학생에 대해서 한탄하는 이야기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이미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읽기가 싫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든다.
이 책 외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중에 읽은 것은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와 "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인간의 현재 " 편이 있다. 이중 뇌를 단련하다라는 책은 도쿄대에서 강의를 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어가 있다. 덕분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읽지 않았어도 왠지 어떤 내용일지 혼자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읽는 것이 읽지 않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일반적인 책에서 등장하는 짜임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보게 되면 어떤 짜임새를 느끼게 된다. 이 짜임새는 내용의 통일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였기에 주제가 모두 깔려 있어서 " 통일성은 있었다 "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서로간에 주고 받은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기에 많이 산만한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듣기와 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볼수가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놀게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일에 관련된 사람은 많이 알게 되지만, 내가 관심이 없거나 관련이 없는 분야의 사람들은 만날일이 거의 없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이들은 나름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져서 다른 이들보다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다르다 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일까? 이야기가 자꾸 여기저기로 넓어지기만 하는 이유말이다. 덕분에 이런 주제로 이런 이야기도 오고갈 수가 있었음은 좋았지만 깊은 이야기에 대한 것은 많이 부족했다. 이들의 나눈 이야기 중에서도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인터넷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내 자신이 인터넷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 처음 이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위해서 다시 읽었다. 책을 두번 이상은 잘 읽는 않는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읽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깊게 남지 않아서였다. 뭔가 괜찮은 말이 오갔던 것 같은데 전체적인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문제는 두번 혹은 세번일지도 모르는 이번 읽기에서도 딱히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고, 인상이 깊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어쩌면 " 다 별이야기 아니야 "라고 무의식이 생각을 지배했기에, 대면대면 넘겼을 수도 있다.
이 책 자체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다. 특히 이 들의 이야기 속에는 이들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가 주로 나오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과 생각을 접할 기회도 된다.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다른 일반 책과 같은 구성이 있고, 꼭 전달하고 자하는 것을 정리해서 받기를 원한다면 이 책에서 얻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책을 무언거 얻기 위해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려 본다면, " 일본의 유명한 지식인 세명의 읽기와 듣기에 관한 수다 "가 되겠다. 다른 이들은 어찌 정의를 내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리고 싶었다. 너무 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취급을 한 것일까?
언제나 책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하게 되는 고민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책에 관련된 글은 책을 읽고 쓰게되는 감상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 감상이란 것은 사람의 개성에 따라 모두 제각각으로 표현된다. 내가 처해 있는 입장이란 것이 있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며, 내가 싫어하는 것이 모두 반영된 것이 감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쓴이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 감상이다.
직업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이들을 배려해 객관적인 감상을 적을 이유는 없다. 직업으로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완벽한 객관화를 시킬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또 그렇게 쓰려고 하는 기자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글에 녹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감상이란 것은 글자 그대로 感想(감상)이어야 한다. 느끼다의 의미를 가진 感(감)자와 생각하다의 의미를 가진 想(상)자의 결합인 것 처럼. 감상은 느낀 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객관적일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비난이나 받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이 느낀 감상과 다르다고 감상을 적은 이에 대해서 비난 하는 이들이다. 감상을 적는 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적는 것일진데, 글쓴이와 다른 생각이 있음을 표현하는 수준이 아닌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라 할 수 없다. 그와 더불어 누군가의 감상에 자신만의 감상을 표현한 이에게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 또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른 이의 생각을 듣겠다는 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에 나타난 읽기의 힘과 듣기의 힘이란, 누군가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누군가의 생각을 잘 읽어봐주는 힘이라 생각한다. 읽는 다는 행위와 듣는 다는 행위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가 아닌 다른 이의 생각을 보고 듣는 다는 것이니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책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 읽기의 힘, 듣기의 힘 "은 일본에서 유명한 이들이 책의 제목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것을 담은 책이다. 정확한 표현은 심포지엄인데, 유명인 세명이 모여 수다를 떤 것이라고 표현하든 학술적인 심포지엄이라고 말하든 나는 그닥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사람들간의 대화의 장이니까.
이들은 일본에서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중 다치바나 다카시 외에 아는 이가 없다. ㅡㅡa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 역시 다시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였으니 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언제나 가볍지 않다는 믿음과 어렵지만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를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끔 구입을 한다. 그렇다고 그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그의 책은 세권 정도 읽었다. 한국에 다치바나 다카시를 대중적으로 알렸던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라는 책은 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늘어 놓는다면, 왠지 일본에 사는 최고의 지성이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푸념서(?)의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학생에 대해서 한탄하는 이야기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이미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읽기가 싫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든다.
이 책 외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중에 읽은 것은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와 "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인간의 현재 " 편이 있다. 이중 뇌를 단련하다라는 책은 도쿄대에서 강의를 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어가 있다. 덕분에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읽지 않았어도 왠지 어떤 내용일지 혼자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읽는 것이 읽지 않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일반적인 책에서 등장하는 짜임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보게 되면 어떤 짜임새를 느끼게 된다. 이 짜임새는 내용의 통일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였기에 주제가 모두 깔려 있어서 " 통일성은 있었다 "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서로간에 주고 받은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기에 많이 산만한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듣기와 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볼수가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놀게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일에 관련된 사람은 많이 알게 되지만, 내가 관심이 없거나 관련이 없는 분야의 사람들은 만날일이 거의 없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봤을 때 이들은 나름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져서 다른 이들보다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다르다 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일까? 이야기가 자꾸 여기저기로 넓어지기만 하는 이유말이다. 덕분에 이런 주제로 이런 이야기도 오고갈 수가 있었음은 좋았지만 깊은 이야기에 대한 것은 많이 부족했다. 이들의 나눈 이야기 중에서도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인터넷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내 자신이 인터넷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 처음 이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위해서 다시 읽었다. 책을 두번 이상은 잘 읽는 않는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읽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깊게 남지 않아서였다. 뭔가 괜찮은 말이 오갔던 것 같은데 전체적인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문제는 두번 혹은 세번일지도 모르는 이번 읽기에서도 딱히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고, 인상이 깊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어쩌면 " 다 별이야기 아니야 "라고 무의식이 생각을 지배했기에, 대면대면 넘겼을 수도 있다.
이 책 자체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다. 특히 이 들의 이야기 속에는 이들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가 주로 나오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과 생각을 접할 기회도 된다.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다른 일반 책과 같은 구성이 있고, 꼭 전달하고 자하는 것을 정리해서 받기를 원한다면 이 책에서 얻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책을 무언거 얻기 위해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려 본다면, " 일본의 유명한 지식인 세명의 읽기와 듣기에 관한 수다 "가 되겠다. 다른 이들은 어찌 정의를 내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리고 싶었다. 너무 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취급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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