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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이유에 떠도는 아비뇽 소문 2 - 기사단의 운명 본문

역사/게임으로 보는 대항해시대

마르세이유에 떠도는 아비뇽 소문 2 - 기사단의 운명

무량수won 2009. 6. 15. 18:00
오늘의 모험은  [ 기사단의 운명 ] 입니다.


지난번 마르세이유에 조사했던 아비뇽 소문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비싼 음식 재료의 비밀을 밝혀내고 돌아오자 의뢰 중개인 아저씨가 급하게 부르더군요.

" 미안하네 한 꺼번에 알려주어야 했었는데 나도 자네가 모험을 떠나서야 알았다네 ^^; "

헐.... 이 무슨....

" 이번에는 확실히 마무리 지을수 있을 것이네 부탁하네 "

뭐.. 어쩔수 없지요. 가난한 모험가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시키면 해야지 ㅡㅡa




무얼 그리 드셨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르신 사제님께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필립 4세란 이 양반... 참..


뭐야.. 돈 빼앗으려고??? 기사단을 체포했단거야????





내 옆에서 이렇게 비웃던 장인 아저씨가 템플기사단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을 줄이야. ㅡㅡa  혹시 다 알고 웃고 있던걸까??????



자 그럼 실제 역사의 템플기사단을 알아 봐야겠지요?

정식 명칭은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 으로 '예수의 가난한 군병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라틴어 입니다. Ordre des Templiers 라고도 하는데, 이건 프랑스어.

한국에서는 템플기사단 혹은 성단 기사단이라고도 하는데요. 성단 기사단이란 용어는 예전에 템플기사단의 의미를 한자어로 바꾸어서 번역한 결과입니다. 제 추측에는 일본에서 번역한 것을 그대로 따온듯 하지만요. ㅡㅡa 
(참고로 오래된 전문 서적은 이렇게 한자로 번역된 일본서적을 이중 번역한 것이 많아서 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그럼 왜 성단 기사단이라고 불리우고 템플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는지 그 의미를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유명한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하자 원정에 참여한 기사단에게 여러 명칭이 주어집니다.
독일에서온 기사단은 튜튼 족이라고 해서 튜튼 기사단으로, 부상자나 간병을 주 업무로 하던 기사단은 요한 기사단으로 불렀습니다. 그중에서 프랑스 상파뉴에서 온 기사 위그 드 파양스가 조직한 기사단은 전설에 솔로몬 왕의 성전이 있던 언덕에서 거주한다고 해서 '템플 기사단'이란 명칭을 얻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여러가지 특권이 주어지게 되는데요.

국경통과의 자유와 납세의 금지, 교황이외 군주나 사제의 복종의무가 면제가 된 것이지요. 결국 이들은 교황의 친위대이기도 하고, 교황이 아닌 그 누구도 건들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1147년 루이 7세는 파리 교외의 광대한 영지를 하사하게 됩니다. 여기서 교황이나 외국의 군주가 방문하게 되면 묵게 되었고, 프랑스 왕가의 보물과 돈을 보관하게 됩니다.

1163년에는 수도회와 재산의 보호가 가능해지고, 사제로부터 독립되어집니다. 아마 그들의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고, 사제로써의 의무가 면해지는 것 같습니다. ㅡㅡa

이런 특권 속에서 이들이 얻은 것은 막대한 재력입니다. 실제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하고, 예루살렘에서 전투에 참여한 인원은 많지 않고, 전투를 지원하는 업무에 더 많은 사람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례자를 상대로 금융업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를 쌓아 올린 템플 기사단은 14세기에 들어서자 위기에 닥치게 됩니다. 프랑스 왕이던 필립 4세의 권한이 날로 갈수록 강해져서 교황을 좌지우지 하는 위치까지 올라섰던 것이지요.


프랑스 왕은 교황과 추기경을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지요.


그런 필립 4세에게 있어서 골치 거리가 하나 있었답니다. 템플 기사단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제정은 영국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오랫동안 전투로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그 자금을 템플기사단이 빌려 주었습니다.

왕권은 점차적인 중앙집권화로 강해져 있었지만 자금적인 면에서 매우 버거웠던 것이지요. 애초에 교황외에는 건들수 없던 그들이지만 교황과 추기경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 넣은 필립 4세에게 있어서 템플 기사단은 탐스러운 열매가 된 것입니다.


자세한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필립 4세는 교황과 추기경을 앞세워 템플 기사단을 이교도로 선언하고, 재산을 몰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시기 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시기에도 이단이란 이름은 주로 정적들에게 씌워져 탄압을 하거나 죽이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세 시기에 교황은 이 단어를 이용해서 엄청난 힘을 행사하기도 했었답니다.



2008년 8월 한겨례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하나 올라왔는데요. 템플기사단의 후예들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상대로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결정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옛 문서의 기록중에 클레멘스 5세가 템플 기사단은 이단이 아니지만 필립 4세와의 평화를 위해 해체 했다고 합니다.

역사의 진실은 과연 ㅡㅡ??

이전 이야기는 여기


여기서 조심할 것 한 가지.

이런 종교적인 사건이나 문제에 있어서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시각과 종교인이 바라보는 시각이 좀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아무래도 종교인 시각에서는 이들을 나쁘게 말해봐야 좋을 것이 없기에 많이 미화를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인터넷 자료들 중에서도 이런 시각차이를 반영해 좀 상반되게 말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되도록이면,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시각쪽에서 바라보려고 하니 다른 곳에서 본 내용과 다르다면, 이점 참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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