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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잡담

고조선이야기

무량수won 2010. 12. 27. 18:07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단군과 고조선 부분에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단군왕검이 건국했다는 것과 고조선의 영토를 예측할때 쓰인 것이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 진나라와 한나라가 바뀌던 혼란한 시절에 위만이란 사람이 한반도쪽으로 와서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서 그 나라를 위만조선이라 부른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 중에서 위만조선에 관한 것은 학교에서는 잘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인정해서 내용을 넣는다고 해도 통치자가 중국에서 넘어와서 왕권을 빼앗았으니 그냥 나쁜놈 정도로 인식하고 넘어 가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보고 있는 국사책은 2002학년도 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의 교과서다.



만약에 이부분에서 시험문제를 낸다면, 중요단어는 제정일치(祭政一致)와  8조법, 비파형동검, 고인돌이 아닐까?

이 단어들은 고조선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로써 제정일치는 종교와 정치적 우두머리가 한 사람에게 그 힘이 주어졌다는 뜻이고, 8조법은 사유재산의 개념과 계급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주는 의미는 같은 문화를 공유했다는 뜻이기에 하나의 통치자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 자세히 들어가면 세형동검도 있고 등등 여러가지 추가되는 것을 통해서 고조선이 존재했을 때 통치 범위를 예측 할수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그 물건이 나왔다고 모두 같은 통치자를 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시대에 생각하는 통치자 개념이 당시의 통치자 개념과는 또 다른 모습일수 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증명할 만한 확실한 증거들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러한 국사 교과서의 확장판이라 볼수 있는 것이 한국사통론이다.

한국사통론에서 이런 통치 모습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서 군장국가 혹은 군장사회라고 부르고 있다고 전한다. 국가가 아닌 사회라고 칭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 시각에서 바라봤을때 당시의 유물이나 기록들이 국가라 하기에는 너무 느슨하고 강제적인 결속력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말하는 아니 역사학적으로 말하는 고조선에 대한 문헌 자료는 모두 중국 대륙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실제 고조선의 위치나 크기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왜곡이 충분히 있을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문화같은 경우는 중국대륙쪽 문화와 비교했을 때 좀 특이하다고 생각 되었던 것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들어 지금 시대에도 매일 일어나는 일을 뉴스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상적이지 않고 충격적인 것을 우선으로 뉴스로 남기고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당시에 글을 쓸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과 문헌으로 남겨질 정도로 보존이 될만한 자료에서 자신들과 같은 것을 굳이 기록하려고 했을까? 기록했다면 이런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라고 했겠지 그들의 특징에는 ~~점이 있다는 식으로 적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글로 ~~점이 있다 라고 적었다는 말은 아니다. ㅡㅡ;;;



우리가 흔히 아는 단군 조선에 대한 전설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나온 것임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사통론의 단군신화 이야기를 이렇게 말한다.

옛날 하늘의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을 품고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베풀고,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면서, 곡식, 수명, 질병, 형률, 선악 등 무릇 인간 360여 가지 일을 다스렸는데, 이 때 여자가 된 곰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단군왕검이며, 단군왕검은 B.C. 2333년에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것을 국사책에서는 환웅 부족이 곰부족과 호랑이 부족을 통합했고 그에 반기를 든 것이 호랑이 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그냥 신화를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신화를 통해서 그것이 사실은 이런 저런 이유에서 이런 신화가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그냥 가설일 뿐이고 이후에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각할 문제지 그 가설을 정확한 증거로서 증명된 것처럼 국사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국사통론에서 이야기 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이란 명칭은 [관자(管子)]라는 것에서 처음 나온다고 한다. 관자는 선진시대의 중국 사료다. 선진시대란 진시황이 진나라로 통일하기 전의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를 말한다. 유교를 구분할 때 선진유교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다.

[관자]에서는 조선의 시작을 기원전 7세기 전에 시작된 것으로 말하고, 8천리 밖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중국의 요령성 쯤 된다고 판단하고, 이 요령성 부근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이 기원전 9세기경이기에 이 주장을 뒷받침 한다고 한다.

일단 조선이 시작된 기원에 대한 것과 비파형동검의 발견에 대한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조선의 위치에 대한 것은 그들의 거리 개념 뿐만아니라 그것이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 수도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고, 조선의 시작 또한 어떤 근거에 의해서 관자에다 그렇게 적었는지 알수가 없다. 더불어 비파형동검이 나왔다고 그 곳이 꼭 조선의 영토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 또한 생각해야한다. 뭐 이런식으로 의심하면 밑도 끝도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심은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국사책은 조선을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정도로 구분을 한다. 여기서 위만 조선이란 진나라와 한나라가 교체되던 시기 즉 진시황이 죽은 기원전 210년과 한나라가 들어서는 기원전 209년 사이에 위만이란 사람이 중국 대륙에서 유민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왕이었던 준왕은 변방을 지키는 일을 시켰고, 위만은 그러면서 세력을 확대하다가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기원전 194년의 일이라고 한다.

이후 위만조선은 철기문화를 숭요하기 시작해서 많은 발전을 했지만 기원전 108년 한의 무제가 쳐들어와 조선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군현을 설치하고 지배했다고 한다. 이후 고구려에 무너지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군현이란 지금의 행정구역을 말하는데, 정복을 한 땅에 관리를 보내서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만조선전에 기자조선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을 한국사통론에서는 그냥 전설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1970년대의 논문을 바탕으로 이야기 되는 것인데 뭐 그건 내가 직접 논문을 본 것이 아니니 그냥 넘기기로 하겠다. 기자조선에 대한 것은 한서(漢書) 지리지와 사기(史記), 상서대전(尙書大全)에서 전해진다고 한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보통 기원전 200년 전후의 시기인데, 이 시기에는 앞서 적었지만 중국대륙에서는 진나라가 통일되고 얼마 가지 않아서 한나라가 들어섰다. 유명한 서양역사와 비교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엄청난 제국을 만들어놓고 죽은 것이 기원전 320년 경이 되니까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이 무너지고 약 100년 후쯤의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이 위만조선 이야기라고 보면된다. 기원전 200년쯤이 되면 로마가 성장하고 있던 때였고, 유명한 한니발이 활동하던 시기로써 지중해 패권을 두고 카르타고와 로마가 피터지게 싸우고 있던 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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