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독서토론까페
- <프랑스존>
- <주한프랑스대사관>
- <팀블로그>반동탁연합
- <디아블로3 한국 공식홈페이지>
- <그린비출판사>
- <구글코리아블로그>
- <syfy 드라마 홈페이지>
- <게임소식사이트(영문)>
- <Creative Commons Korea>
- 포토샵활용편
- RetroG.net - 게임이야기 번역 -
- 스노우캣
- Forest of Book
- I Feel the Echo
- schrodinger
- 사진은 권력이다
- 하이드 책방
- MBC노동조합블로그
- 니자드 공상제작소
- 어린쥐의 볕들 쥐구멍
- 베이더블로그
-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
- 불량푸우의 '인생사 불여의'
- 시사평론가 김용민 블로그
- 지상에서 영원으로(Mr. Ripley)
- 젠체와 젠장의 경계선에서(췌장)
- 이야기만들기
- 우석훈의 임시연습장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본문
이미 예전에 음모론에 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나는 꼼수다(나꼼수)라는 인기 인터넷 방송을 가지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냥 나꼼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만 흘러서 음모론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썼다.
그래서 음모론이 나타는 이유와 그것이 상징하는 것에 대해 이전과 생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예전글과 중복된 느낌이 들 수있다. 웃기는 사실은 그 예전 글을 읽은 사람이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도 나도 모르게 부담을 가진다는 것이다. ㅡㅡ;;;
음모론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란 단어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혹은 근거는 없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많은 사람들"과 "그럴듯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란 단어가 나타내는 사람들의 수가 굉장히 애매하지만 범위를 전국적인 단위로 퍼진 사람들로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전국 단위에서 서울사람들만 알고 있는 소문같은 지역적인 이야기가 나를 난처하게 만들지만 현실적으로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이야기의 고립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관심사의 차이로 인해 이야기의 고립이 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란 세대간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것에도 해당이 되야 한다. 특정 세대만의 고립된 이야기라면, 음모론이란 단어를 붙여두기엔 뭔가 찜찜해지기 마련이다. 이건 뜬 소문과 음모론의 차이를 구분짓기 위한 정의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렇다고 음모론이 세대나 지역적인 색을 가지지 않은건 아니다. 모든 음모론의 시작은 뜬 소문이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정의고 애매모호한 경계이긴 하지만 음모론은 지역적이고 세대만의 이야기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란 이야기의 핵심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건 지역 혹은 세대등의 제약 조건을 넘어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이치에서 본다면 음모론이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연예인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란 글자를 살펴보자. 그럴듯한 이야기는 어떤 사실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이 필요할 때 붙는다. 사람들이 보는 뉴스에서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감정과 구체적인 당사자의 느낌 등이 종종 생략되어 보도가 된다. 물론 요즘 언론들은 결코 그렇지 않지만, 원래 뉴스라는 것의 기본은 이런 거였다.
뭐 현실이야 어찌되었든 우리의 목적은 언론 비판이 아니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사실만을 이야기 하는지에 대한 점이다. 당신이 친구와 어떤 사건 사고에 이야기를 할 때 사실만을 이야기 하던가? 일반적으로 대화는 사실을 중심으로 자신의 느낌과 입장을 덧붙여서 하게 된다. 특별한 훈련을 받거나 기계가 아닌 이상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면, 자신이 관찰한 상황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사람은 하나의 사건을 보고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여기서 예가 될 만한 이야기 하나 만들어보자. 별탈없이 운행되던 버스가 어느날 갑자기 밤 중에 인도로 돌진해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자. 여기까지 주어진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사실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우선 이 버스에 탔던 승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평소에 틱틱거리고 무뚝뚝한 태도로 손님을 받던 버스 기사는 그날도 사람들에게 재수없는 태도로 대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도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사고가 난 후에 생각해보니 술냄새도 조금 나는 듯했다. 아마 운전기사는 음주운전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길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 보자. "왠 미친 버스 하나가 인도의 전봇대를 들이 받았다. 평소에 저런 일을 볼 수 없는 지역인데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니 운전기사가 마약을 했거나 버스 안에서 인질극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요즘 세상이 많이 미쳐있기 때문이다. 요즘 전해지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운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버스회사의 고된 운행 스케줄 때문에 매일매일 하는 운전이 즐겁지 않다. 손님들도 나를 보고 괜히 화를 내고, 기분좋아 지는 손님도 종종 탑승을 하지만 대부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시비를 거는 손님들 뿐이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고된 업무 때문에 동료기사 한명이 일을 그만 두었다. 덕분에 남은 기사들이 그 시간을 메꾸게 되느라 더 힘들어졌다. 그날도 점점 피로가 쌓여가던 날이었다. 술취한 손님들이 많이 탔다. 피로와 열씸히 싸워갔지만 쌓여가던 피로로 졸음이 조금씩 올때즘 갑작스레 누군가 내 뒤에서 뒤통수를 쳤다. 깜짝놀라 나도 모르게 뒤를 바라봤고, 그 순간 핸들을 놓쳐 버스가 인도로 올라가 전봇대와 부딧쳤다."
한가지 사건에 대한 상황 설명도 제각각이고 느낌도 모두 다르다. 대화는 보통 이런 식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느낌으로 각자의 사실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사건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이 모든 시각차이를 살펴봐야만 한다.
지금 당신은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다. 왜 이런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게 음모론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바로 뒤이어서 이야기 해야할 것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음모론을 만들어 볼 것이다. 간단하다 여기서 음모론이 만들어지려면, 바로 핵심적인 사실이 사라지면된다.
당사자인 버스기사 이야기가 핵심이 된다는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버스회사에서 회사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버스기사의 입단속을 했다고 치자. 예시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버스기사의 이야기만 사라지면 이 이야기는 버스에 탔던 승객과 버스 사고를 지켜본 사람만이 남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니던 사람 혹은 이야기를 모아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싶던 사람은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 당사자가 말을 안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았다.
음모론이 말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비어있는 버스기사의 입장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완성시키려고 추측하게 된다. 가장 중요하게 이용될 증언(?)은 아무래도 버스 승객일 것이다. 그의 느낌에 따라 재수없는 기사가 쉽게 만들어진다. 여기에 사건을 목격한 사람에 의해 마약이란 단어가 나왔다. 왠지 재수없는 기사가 술을 마시고 마약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야기의 신속함(?)을 위해서 여기서는 두사람만의 이야기 뿐이 없다고 설정하도록 한다.
이런 인물이 사실이라면, 버스 회사는 운전 기사로 운전중에 술도 마시고 마약도 하는 인상 나쁜 악당을 고용했을 것이란 생각이 미치기 마련이다. 결국 주어진 이야기가 적으면 적을수록 버스회사가 기사의 이야기가 새어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문제해결은 손쉽게 사람들과 음모론이 기쁘게 악수를 나누게만든다. 주어진 증거(?)와 증언이 그런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앞서 말한대로 이 이야기가 그 동네의 몇몇 사람들만의 이야기라면 음모론이 될 수 없다. 그냥 뜬 소문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많은 사람들"이 형성된다면 뜬 소문은 음모론이란 단어의 택시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자! 그렇다면 음모론의 규모에 맞게 이 버스 사고의 이야기를 좀 더 키워보자. 버스에 관한 관리는 지방 행정부(시나 도) 권한이다. 그런데 지방 행정부도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일로 시끄러워졌을 경우 그 지방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소문이 어찌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던가? 그리고 음모론이 여기서 멈추면 음모론이 될 수 없다. 사람에게 던져지는 이야기의 공백이 유지된다면,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결국 사람들은 지방 행정부의 누군가의 비리를 덮기 위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도 버스를 관리할 책임이 있던 사람이 현재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창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이쯤되면 버스 사건은 국가적인 사건으로 등극하게된다. 음모론이 제대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었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게된다. 속도가 붙는 음모론에서는 그냥 동창이면 충분한 근거가 되버리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이런 식의 이야기 확장은 언론들이 더 많이 한다. ㅡㅡ;;
여하튼 이렇게 어떤 지역의 단순한 버스 사고는 대통령이 연결된 비리사건으로 탈바꿈 된 것이다. 대통령이 평소에도 비리 사건이 많더니 이번에도 역시나였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재생산된다. 이런 식으로 살이 붙기 시작된 이후에 사실은 이런 것이다라고 발표가 나온다면 이 상황이 진정이 될까? 음모론에 살이 붙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진정되지 않고 발표된 내용가지고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가끔은 처음부터 진실을 말해도 음모론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럴때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을 말하는 쪽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져있는 가능성이 크다. 마치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두어번 양치기의 말을 듣고 달려와 주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땐 외면해 버리는 것처럼.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 처럼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진실이 발표되어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버리는 것이다.
결국 음모론은 우선 감추려는 비밀에 의해서 시작되고, 무너져버린 신뢰가 확대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수 있다. 더불어 신뢰가 무너져버린 상황에서는 비밀을 감추려하지 않아도 만들어진 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단순한 사고가 어떻게 대통령 비리까지 연결되는지 음모론을 같이 만들어봤다. 단순하게 말해서 음모론은 참 안좋은 것이다. 앞서한 예와 상반된 느낌이지만 음모론은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음모론의 당사자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그 덩치가 크기 때문에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 까지 난처하게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음모론은 잘못되었으니 관심을 끊고 살아야 하고 음모론을 만드는 사람들을 무조건 욕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야기가 없으면 살 수없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사는 곳에는 소문이 존재하고,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떠돌아야만 한다.
지구란 행성에서 사람들 사이에 말이 없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수 있을까? 꼭 입이 아니더라도 몸짓 발짓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만약 그조차도 못하게 된다면, 이글을 보는 당신과 나는 밥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잘 해결해도 얼마가지 않아 지구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없앨 수 없는 음모론에 대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음모론에 대한 분석이다. 왜 그런 이야기가 떠돌게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붙였을까? 어째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게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이유 말이다.
음모론이 생겨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앞서 말했다. 잃어버린 신뢰라는 단어를 부득이한 이유 때문에 놓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따라야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선 음모론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음모론의 양과 부풀어지는 규모를 가지고 사회에 대한 신뢰문제를 진단할 수가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수치로 만들 수는 없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기에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며, 음모론이라는 것이 가끔은 진짜로 감추려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있어서 무엇이 음모론이고 무엇이 음모론이란 가면을 쓴 진실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종종 상대의 이야기가 음모론이라 쉽게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음모론일 뿐이라며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 무시할 때가 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 속의 음모론이란 단어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음모론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는지를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음모론이 허황되면 허황될수록 그 무너진 신뢰 상태는 심각하다는 신호라고 보면된다. 뿐만아니라 그 음모론이 사실은 진실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는가?
'문화 컨텐츠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언맨3, 괜한 이야기 연결해보기 (0) | 2013.04.30 |
---|---|
일베의 매각 이야기와 인간성의 판단. (4) | 2013.04.27 |
대중에게 연예인의 연애는 프로게이머의 게임이다. (0) | 2013.03.30 |
나이가 많으면 반말해도 되나? (38) | 2013.03.17 |
시끌시끌한 아키에이지를 기대하지 않는 이유. (19) | 201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