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알아도 쓸데 없는 역사 이야기 - 희망봉의 발견 본문

역사

알아도 쓸데 없는 역사 이야기 - 희망봉의 발견

무량수won 2010. 4. 9. 13:30
포르투갈은 꽤 좁고 답답한 나라이다.

왜냐면... 이베리아 반도라는 곳 한 구석에 몰려 있기에 그렇다.

포르투갈이 교역을 하려면 스페인을 거치거나 배를 타고 빙~ 돌아야 하는 상황이다.







글어스로 살펴봐도. 딱히 육상으로 스페인 외에 다른 나라와 이어진 길이 없음을 알수가 있다.

때문에 포르투갈 역사이야기에 스페인이 빠질수 없고, 스페인 역사 이야기에 포르투갈이 빠질 수가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 나라에서 항해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포르투갈에서 항해술이 발달하던 시기에는 모든 유럽에서 항해술이 발달하고 있었을 테니까.

다만 주변의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배를 통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강했을 지는 모른다.





이런 포르투갈이 큰 업적을 하나 세우게 된다.

14~15세기 유럽에서는 머나먼 동쪽의 나라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통해야만 했다.

러시아가 유럽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나라로 부르기에도 뭐했고, 아직 시베리아로 진출하기 전이었다. 게다가  그쪽은 몹시 춥기도 했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유럽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중동 지역과 무역에 의존하기 보다. 스스로 배를 타고 새로운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장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을 실고 항해 할 수있는 배를 만들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항해중 자신의 위치를 알수 있는 계산 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장기 항해를 위한 모험을 할 때 이미 완성 된 것은 아니었다.

수 많은 탐험가들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쌓인 기술일 뿐이었지만, 도전 해볼만한 지식이 그들에게 있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다가 포르투갈에서 1485년 디에고 캄 이라는 사람이 콩고강까지 도달하게 된다.

뒤이어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즈는 케이프를 돌아서 알고아 만까지 도달한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을 돌았지만 아직 확실한 항로는 아니었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나탈지역까지 도달한 이후에야 동쪽의 나라들과 교역 할 수 있는 항로로써 인정을 받게 된다.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항해 하던 탐험대가 그전의 업적에도 못미치는 결과를 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지나온 곳 중에 최남단이라고 생각되는 지역에 처음 도착한 바르톨로뮤 디아즈는 Tormentoso 라 이름을 붙였다. 의미는 폭풍의 언덕, 혹은 폭풍의 지역이라고 한다. 실제 그가 최남단이라고 생각했는지는 확신 할 수 없지만....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디아즈가 이곳을 지나갈 때 폭풍에 의해서 많은 고생을 했던 경험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이 이름을 비추어 보건데, 디아즈가 처음 지나간 이후 바스코 다 가마가 확실히 항로로써 굳히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그 곳에서 폭풍이 꽤나 불었던 것 때문일 것이다라고 추측해 볼수가 있다.




그런데 당시 포르투갈의 왕 조앙4세는 이곳의 이름을 Boa Esperanca 로 이름을 바꾸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게 되는 희망봉 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영어로는 Good hope 로 이야기 되지만 요것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희망봉(希望峰)이라는 한자어를 얻게 된다.

현재 영어 정식 명칭은 Cape of Good Hope 이다.


< 출처 : 구글어스 >



위 사진은 희망봉을 동쪽에서 본 풍경이라고 한다.

나도 그러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희망봉을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최남단은 다른 곳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건데 그 누구도 나한테 희망봉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이야라면서 말해준 기억이 없다. ㅡㅡa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곳을 사람들 기억에 많이 남아 있게 된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동쪽으로 진출하게 된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술적으로 따진다면, 좀 더 화려하고 거창하고 세세한 이유가 등장하겠지만 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희망봉의 발견이라는 것이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희망봉의 발견이겠지만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특이한 사람들의 출현일 것이다. ㅡㅡa 물론 나도 제목에다가 희망봉의 발견이라고 해놨지만...



*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 남아프리카 역사 - 김윤진 " 이 책을 참고 하면 괜찮을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