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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한 이유 본문

문화 컨텐츠 연구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한 이유

무량수won 2010. 8. 21. 11:15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잔인함과 야함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잔인함이란 보통 피가 튀는 장면과 시체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야함은 노출보다 섹스씬에서 논란이 빚어진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만약 잔인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섹스씬에서 문제를 삼았을 것 같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란 영화다.

영화를 보고난 후 포스팅을 하면서 잔인함에 대해서 이미 이야기 했지만, 상업영화 치고는 꽤나 높의 수위의 잔혹함을 보여줬다. 이미 외국의 B급 영화들을 접해봤기에 나는 괜찮겠지란 생각으로 접근했음에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영화 상영 전부터 논란이 있긴 했었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서 1분 30초 가량 잔인한 장면을 제거하고서야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지운이란 감독의 이름과 이병헌과 최민식이란 배우의 등장이었기에 더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러한 관심은 그저 붙여넣기에 바쁜 연예 기자들의 설레발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상영은 하고 있고, 논란과 더불어서 흥행에도 성공한 듯하다. 이 영화의 흥행을 지켜보면서 내 머리속을 스쳐간 것은 스파르타쿠스라는 미국 드라마였다. 스파르타쿠스는 미국에서 케이블로 방영한 드라인데, 한국에서도 미리 소문을 들었었는지 케이블에서 일찍이 판권을 구입해서 방영을 해줬다.

스파르타쿠스도 방영 전에 이미 잔인함과 야함 때문에 말이 많았던 드라마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이야기 되었고,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케이블 TV방영을 감안했을 때 스파르타쿠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라고 연예 기자들이 호들갑들을 떨었다. 스파르타쿠스도 같은 식이었다. 말이 많아 질 수록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 내렸고,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렸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잔인함과 야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꽤 좋은 평을 받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잔인함과 야함을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 할수가 없다는 것에 있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지만 대중문화에서 잔인함과 야함의 수위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가 논란의 중심에 있긴 하지만 사실 그동안 잔인한 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악마를 보았다는 그러한 잔인함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시험해보는 작품이었을 수도 있다. 대중들이 어느정도 허용을 해주는지, 어느 정도에서 외면을 하는지 그 선을 잡아보기 위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스파르타쿠스의 경우도 TV에서 방영될 수있는 최대한의 수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보는 드라마였을 수가 있다. 비록 미국의 원판에서 조금씩 잘려나가기는 했지만 국내에 방영된 것도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작품들이 하나씩 대중들의 수위에 도전장을 내어 놓음으로써 조금씩 대중들이 허용할 수 있는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품을 만들다보면,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수위를 높일 수가 있다. 문제는 대중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TV용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예술가 이전에 대중을 위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소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절대 대중을 무시하고 갈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평가할 때 대중을 위한 것을 만들던 사람인지 소수의 매니아를 만족시키는 것을 만들던 사람인지를 보고 판단한다.

이건 같은 감독이라도 김기덕이 만드는 영화에서 악마를 보았다의 잔인함이 나오는 것과 김지운이 만드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의 차이다. 만약 김기덕의 영화에서 이정도 잔인함이었다면, 그에게 환호하는 소수만의 영화가 되어서 예술 작품이라 칭송받았을 것이다. 김기덕이란 이름은 예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작품은 호평을 받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감독이란 이미지가 있다. 때문에 악마를 보았다란 영화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중을 위한 상업영화를 중점적으로 만들던 김지운의 영화였기에 상당수의 대중들이 반감을 가진 것이다. 같은 영화 감독임에도 그동안의 행적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김기덕의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영화관에 걸리지도 않았겠지만 ㅡㅡa

악마를 보았다라는 영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중 문화는 점점 잔인해지고 야해진다. 설사 김지운이 아니었다라도 언젠가 한번은 누군가 이 논란을 불러왔을 것이다.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듯이 누가 할까 눈치를 보다가 김지운이 먼저 한 것이다. 대중예술을 한다는 이들은 이렇게 점점 수위를 높여만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높여놓은 수위와 더불어 대중들의 허용범위도 높아만 간다.



이렇게 변해가는 대중문화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 것인가?

이미 높아져버린 수위를 다시 낮추기란 매우 어렵다. 이 수위는 점점 높아져만 갈 것이고, 그에 대한 대책은 없다. 아무리 종교란 이름으로 막아보고, 정부가 막는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사람들이 반발을 할 것이다. 대중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 대중에 의해서 구성되는 사회이기에 누군가의 뜻만으로 바꾸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는 아니 대중 문화라는 것은 대중의 욕구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그에 호응을 하고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대중이 그에 호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 시대의 대중문화는 될수가 없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 생전에 환호를 받지 못하다가 그의 죽음 이후에 작품의 가치가 인정 받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따지고 들면 매우 다른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심해지는 폭력성은 어쩌면, 막나가는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에 답답해 하는 사람들의 욕구 분출구 일지도 모른다. 이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폭력성은 그냥 높아져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성에 사람들이 그냥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네오가 반복된 일상에서 작은 일탈을 일삼다가 모피어스라는 테러집단의 우두머리를 집착하며 찾아가듯이. 점점 높아져가는 잔인함과 야함은 현대라는 공간에 같혀지내는 대중들이 찾아나서는 일탈인 것이다. 발버둥 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공간. 쉽게 벗어나기 힘든 세상에서 찾는 일탈 같은 것이다.

대중 문화의 폭력성이 심해질수록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을 욕하기 전에, 어디에선가 대중을 억압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가 대중의 환호를 받은 이유처럼 80년대에 애마부인이 대중의 선택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악마를 보았다가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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