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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및 답변

피에르 부르디외를 처음 접하다

무량수won 2012. 1. 13. 00:50



일개 백수 주제에 값비싼 월간 잡지를 읽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생각했던 개념을 일찍이 정리해 준 어떤 인간을 접하게 되었다. 

피에르 부르디외.

가끔 어떤 인물에 혹은 어떤 사건에 푹 빠져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개념화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2012년 한국판 르 몽드 디플로마티끄에 브르디외의 글 두편이 실렸다. 르 몽드에 의하면, 올해 그가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던 '국가에 대하여'라는 것이 올해 1월 5일 출판되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ㅜㅜ 애석하게도 한국에는 안나왔다.

거기서 내가 "그래 이거야" 하고 감탄했던 것은 이런 이야기 때문이다. '야누스 효과'라는 것인데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공의 선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동시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전유할 수도 있다." 고 전한다. 그는 공공이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보편화에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들어 미터법으로 단위를 통일시키는 것이라든지, 표준어라는 것을 정해놓는 일 등이 보편화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지만 이런 보편화에 들지 못하는 각지역의 단위와 지방의 사투리가 차별을 받게 되고 모든 것은 표준어의 중심이 되는 도시 즉, 수도로 모든 것이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은 자본이다.

또한 이는 여론 조사라는 것을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여론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득권층의 장난질(?)로 인해서 여론이 다르게 나타나고 여론이라는 것을 무기로 다른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경계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다수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폭력이었는데 부르디외가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있었다. 

나는 다수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폭력이 마녀사냥을 낳고, 학교에서는 왕따라는 문제를 낳고, 소수의 이야기를 듣지않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이야기를 무시하게 된다는 것은 다수의 폭력이 심해지면 그것은 다수를 등에 업은 이들이 자신의 편을 확인하고 다수의 의견을 맹신으로 이어져 쉽게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게 된다는데 있다고 본다. 


나중에 그의 책을 구해서 더 읽어봐야 더 자세한 것을 알수 있겠지만. 그나저나 자꾸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뭐니 하면서 파고 들기 시작하면 나에게는 썩 좋지 못한데 왜 자꾸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서 말끝마다 그들의 개념들을 끌어다쓰면서 괜히 어려운 말을 섞어쓰기 때문이다. 쉽게 쓸수 있는 말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좀 멀리하고 있었는데... 에휴...  


두편의 글중 한편은 전체 공개되어 있으니 아래 링크로 그 글을 확인할 수가 있다.

> 보편성의 독점, '국가'라는 야누스 <  - 르 몽드 디플로마티끄, 한국 2012년 1월판, 피에르 브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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